창 밖의 풍경

어떤 아이의 일탈

소띠여사 2009. 8. 16. 10:39

 

지난 금요일 혼자서 일하느라 바쁜데 어떤 아이가 와서 '경찰서에 전화 좀 해 주세요'한다.

경찰서에 전화를 해 달라는 요지가

남자친구에게 핸드폰을 빼앗겼고, 다리 등에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펄이 들어간 아이셰도우와 마스카라로 눈화장까지 했는데,

마스카라는 온통 흘러내려서 볼딱지며 눈 주위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이 울었다는 것을 알 수있게 했다.

옷을 입은 모양새는 비교적 얌전하고 뜯어지거나 오물이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정도쯤으로 보이는데, 정신이 온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정신이 없는 아이는 경찰에 얼른 전화해서 보호자를 찾아주는 것이 가장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고,

정신이 온전한 아이는 사정의 전후를 들어 본 후 직접 도움을 주는 것이 빠르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에서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이다.

 

말을 시켜보니 앞뒤의 일을 짤막하게 끊어서 이야기를 하지만 정신이 없는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엄마의 전화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해 보니 정말 전화를 안 받을 테세다.

계속 차는 들어오고 전화는 받지 않고, 참 난감하다.

그런데 전화연결이 안될만한 즈음 전화를 받는다.

얼마나 반가운지, 전화를 받아 줘서 고맙다고 넙죽 절이라고 하고 싶었다.

 

아이 엄마도 아이를 찾고 있었단다. 그런데 일을하는 처지라서 어쩔 수가 없다고 아이를 차를 태워서 보내 달라고 한다. 날 언니라고 부르며.

기차로 보내든, 버스로 보내든 차비를 줘서 보내주고 계좌번호를 알려 주면 돈을 부쳐주겠다고 한다.

내가 판단하기에 아이의 심리상태는 불안정해 보였다. 신발을 제 것을 잃어버리고 어른 남성용 슬리퍼를 신고 있었으며, 고등학생 쯤으로 보였던 외모와는 달리(키가 무척 컷다) 중3이라고 한다.

아이를 찾으러 오면 좋겠다고 하니, 거듭 일을하고 있기때문에 그럴수가 없단다.

그 아이 엄마에게 한편으로 화가나고, 한편으론 이해도 돼었다. 벌어먹는다는 것의 버거움에 대한 이해이다.

 

과연 이 아이에게 차비를 쥐어 주며 집에 찾아가라고 할 수 있는가?

오지랖 넓은 나는 그렇게 못한다.

아이 엄마에게 내가 고속버스를 태워서 보내고, 출발시간과 차량넘버, 도착시간등을 알려줄테니 꼭 강남터미널로 마중을 나와야 되며, 경찰에게 신고를 해야 된다고 다짐을 주었다.

 

작은아들놈에게 뭐하냐고 전화를 하니 친구와 놀고있단다.

그래 잘 됐다.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으니 빨리와서 차에 태워서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짜증난다면서 왔다. 여자애이니 어쩔 수 없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가 불안해 할까봐서 설명을 해 주었다.

조금 있으면 오빠들이 올 것이고, 오빠들은 비교적 착하며, 너를 데리고 버스터미널에 가서 차를 테워주면 엄마를 만나서 집에 가거라. 그리고 엄마를 못 만났을 때 전철을 타고 꼭 집에 가거라 하면서 돈 5천원을 주었다.

만일을 모르니 아이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 안된다는 것을 이곳에 일하면서 가출아이들을 보며 터득한 지혜(?)이다.

서울 차비와 밥을 굶었을 아이에게 뭔가 사 먹일 돈은 아들아이에게 주었다.

 

아이가 좀 안심이 되었는지 나에게 다시 도움을 청한다.

남자친구와 같이 또 다른 후배 여자아이가 저를 잡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 걱정을 하는 것이다.

여자애가 한 명이 아니라 또 있다는 말에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후배 여자애는 그 남자아이에게 잡혀 있는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공범이란다. 가출소녀이고.

그냥 눈 질끈 감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이의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고 처리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난 경찰과 엮이기는 싫다.

 

아이에게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그 애들을 발견하면 꼭 오빠에게 이야기하라고 당부를 했다.

아들에게는 그 남자애를 보게되면 경찰에 신고하고 해결 될 때까지 아이와 함께 있으며,

만일에 대비해서 차를 테워 보낼 땐 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차에 오르게 하라고 했다.

우리아들은 씩씩하게 엄마의 당부를 잊지않고 그대로 실천을 해 주었다.

 

도로변 화단에서 잡초제거를 하던 일군의 아주머니들 중 두분이 부랴부랴 나에게 쫒아 왔다.

'저 여자애를 또 남자애에게 넘겨주면 어떡해요!'하면서 나에게 소리를 쳐 댄다.

뭔 소리인가 물어보니,

아이가가 먼저 그 아주머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나보다.

채팅하다가 여기 순천까지 오게됐는데 그 남자에게 아이를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에게 따지러 왔다.

 

참 황당했다.

어른에게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힘 닿는 데까지 나서서 도와 줄 것이지,

저기 주유소에 들러보라며 보낼 때는 언제고, 일 처리를 못한다 싶으니 쫒아오는 심보는 뭣인가?

우리아들이 버스 테워 보낼려고 데리고 간 것이라고 설명을 해주고

왜 당신들이 도와주지 않았냐고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에게 훈계를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을 당하게 되면 진짜 도움을 줄 어른을 만나더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된다.

이웃의 아이들이 건강해야 내 집의 아이들도 건강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나의 설명과 훈계를 듣고 난 아주머니들이 정말 고맙다며 복 받을 거라는 덕담까지 건넨다.

 

고속버스 차량 넘버, 출발시간, 도착예정시간을 문자로 아이 엄마에게 보내고,

또 문자 확인을 안(못) 할까봐서 전화까지 했다.

꼭 꼭 꼭 아이 마중가라고. 경찰에게 신고해서 해결하라고.

'언니 고마워요'라며 정말 감사해 한다.

 

아이가 집에 도착했다는 연락은 어제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받았다.

늦게 아이를 만나서 내가 잘까봐 연락을 못했노라면서.

난 걱정을 했다.

아이가 휴게소에서 다시 마음이 바뀌어 차에서 내려 버렸나?

서울에 도착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했나?

최악으로 그 남자친구라는 애에게 다시 잡혀버렸나?

......

오지랖을 넓히다 덤터기 쓰는 것은 아닌가? 별별 걱정 다 했드랬다.

 

그 아이가 나에게 고마움을 정말 느낀다면

다시는 일탈하지 말고 잘 커 줬으면 좋겠다.

사춘기는 일탈을 꿈꾸는 시기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고뇌하며 부딪혀 자신을 바로 세우면서 자애(自愛)를 깨닳는 시기이다.

질풍노도는 삐져나가는 길이 아니라 나를 찾아 달리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