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子曰 好勇疾貧이 亂也요 人而不仁을 疾之已甚이 亂也니라
공자왈 "옹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는 것이 亂을 일으키고, 사람으로서 仁하지 못한 것을 너무 미워하는 것도 亂을 일으킨다."
오늘 논어 태백편 강독을 들었다.
'호용질빈이 난야'는 쉬이 이해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구절이나, '인이불인 질지이심 난야'는 도통 받아 들이기가 쉽지가 않다. 인이불인하면 질지하고 또 해서 질지이심해야 할 것을 어떻게 금하라 하셨는지? 앞으로 나가는 교수님의 강의를 제처두고 곱씹고 곱씹어 보았다. 이 글귀를 세상을 향해 대입하는 것을 멈추고 내 자신에게로 옮겨서 생각하니 이해가 팍 와 닿는다.
오늘 낮 남편이 전화를 했다. 지정한 계좌에 6천여원 남짓한 돈을 입금하라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 전기료라고 한다. 벌컥 화가 났다. 왜 쓰지도 않은 전기료를 송금하라고 하느냐고 못하겠다고 톡 쏘아 붙였다. 남편이 난처해 하며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조용히 그냥 송금하라고 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참지 못하고 "왜 그렇게 물렁하게 하는냐, 계속 그런식으로 하니 그 여자가 늘 민폐녀로 남는거다, 이 차제에 확실하게 짚어줘야 다시는 옆사람에게 민폐를 안 끼치고 살거다 "등등 남편 교육(?)을 시켰다.
신안 증도로 발령이 나서 심란한 마음을 추스리기가 쉽지가 않은 터에 남편 혼자 일년일지 이년일지 기약없이 고단하게 살 관사를 살펴보러 갔더니 앞서 산 선생님이 아직껏 짐도 다 정리하지 않았었다. 안내해주신 선생님께서 이삿짐을 옮기기 전에 깨끗하게 정리할 것이라고 하셔서 믿고 며칠 후 이삿짐을 싣고 갔다.
열쇠를 놔 두지 않은 것이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아닐싸 학교에 비치된 열쇠로 관사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처음 우리가 보았던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온 방에 널부러져 있는 옷걸이와 자잘한 살림과 TV, 냉장고, 가스렌지 등 큰 살림도 그대로고, 부엌 싱크대에 온갖 양념통들도 그대로 놓아두고 태평하게 자신은 옷가지와 당장 필요한 짐들만 챙겨서 훌쩍 떠났다. 문을 열어주시던 선생님이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하셨다.
물러터진 남편은 그냥 우리가 가져간 짐을 대충 방 한쪽에 옮겨 놓고 가자고 했다. 주인도 없는데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 얼마나 기분이 상하겠냐는 것이다. 살다 몸만 빠져나간 사람에게도 부아가 나고 이런것을 사리에 맞게 따지고 손질하지 못하는 남편에게도 부아가 났다.
'이사 올 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오늘까지 짐을 치우지 않는 몰상식한 사람에게는 예의를 논할 가치가 없어'하고 소리를 빽 지르고 화장실로 그 짐들을 치워 넣고는 청소를 했다. 쓸고 닦아도 나오고 또 나오는 머리카락은 내 부아를 더 끓어 오르게 했다. 그런데 거기다 고추가루를 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보일러 기름은 잔량이 많으니 돈으로 송금할 것과 아무렇게나 남겨두고 간 TV, 전기장판, 냉장고, 가스렌지 등은 필요하면 인수 할 수 있겠느냐는 그녀의 뻔뻔한 소리를 전해 듣는 순간 정말 어안이 벙벙해서 꼭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섬 살이라는 것이 참 불편하고 적막하다. 그래서 살다 나가는 사람들은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면 깨끗이 닦아서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불문율처럼 이어졌었는데 그새 이렇게 영악스러워 졌나보다.
영악스럽다는 것이 내 악담이라 치자, 고가의 전자제품을 구입하여 필요치 않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넘길 요량이었으면 깨끗하게 집 청소나 하고 기왕 쓰레기 봉투에 담은 쓰레기라도 집앞에 전시를 할 것이 아니라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는 예의 쯤은 챙기고나서 장사를 해도 할 것이지 몰상식의 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덤태기를 씌울 요량이었다니 그 뻔뻔함에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그러고 2월달 전기료도 해결하지 않고 떠나서 3월에 들어가 산 사람에게 전기료를 물라니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냥 조용한게 좋다고 하는 남편에게 쫑알쫑알 쏘아대고 나니 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조금 있다가 어찌 했는지 몰라도 송금을 안해도 된다고 다시 연락이 왔다.
화가 가라앉고 되짚어 생각해 보니 중간에 끼어 매우 난처했을 남편에게 미안해 졌다. 퇴근하고 전화를 했더니 전화기가 꺼져있었다. 밧데리가 다 닳았을 수도 있었겠고, 아니면 화가나서 일부러 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는데 내 맘을 전할 수 없어 마음이 찜찜하던 차에 이 대목을 공부했다.
오늘 내게 꼭 필요한 양식이 이것이다. 그녀의 不仁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의 不仁을 疾之已甚해야 할 문제다.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
정말
深深乎 反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