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제자들이여 청출어람 [靑出於藍]을 실현하자.
顔淵이 喟然歎曰 仰之彌高하며 鑽之彌堅하며 瞻之在前이러니 忽焉재後로다.
- 안연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夫子의 道는>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夫子循循然善誘人하사 博我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
- 夫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 禮로써 나의 행실을 요약하게(묶게) 해주셨다.
欲罷不能하여 旣竭吾才호니 如有所立이 卓爾라 誰欲從之나 末由也已로다.
-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夫子의 道가> 마치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비록 이것을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데가 없도다."
공자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셨고, 공자님의 가르침을 제일 잘 깨달았다는 제자 안연은 왜 공자의 사상의 벽을 뛰어 넘지 못했을까?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스승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학문의 장을 펴지 못했을까?
동양과 서양에서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태초부터 이렇게 다르다 보니 동양은 19세기가 저물어가도록 공자의 품안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를 못하고 갇혀 있었나 보다.
내 의견을 교수님께 개진해 보았다. 교수님께서는 다른 의견을 내 놓으신다. 서양이 동양에 비해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뒤쳐져 있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서양사상의 핵심인 이성과 분석에 힘입어 물질문명을 발달시켰고 물질의 풍요를 이룬 현시대에 와서는 다시 동양사상의 위대함에 눈을 돌리는 추세라는 설명을 하셨다.
나는 동서양의 사상의 경중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후학들의 갇힌 사고를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흔히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마라.'고 말한다. 이 말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림자'라는 단어에는 스승님에 대한 예의와 권위에 아울러 권력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 권력까지를 숭고히 따르는 것이 제자의 본분이라고 억압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알을 스스로 깨고 세상으로 내 딛지 않으면 새는 날 수가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제자들이여 스승의 그림자를 딛고 청출어람을 실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