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원망
어떤이들은 한주기의 삶을 살다 미련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낭만과 인생을 노래하기도 한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 태우면서 나는 냄새까지도 예찬하였다.
여름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다가 하나둘 빨갛게 노랗게 물들여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며 낙하하는 낙엽이
나와는 상관없는 곳에서 연출하는 풍경이라면 나또한 그 모습에서 아름다움만 볼 수 있으련만,
지나는 차가 일으키는 작은 흔들림에도 떨쳐내는 주유소앞 가로수의 낙엽은 나에게 짜증이고 공포이다.
초봄 새잎이 파릇파릇 돋아 날때 그 아름다움 속에서도 가을에 떨어질 낙엽을 생각나게 했고,
여름 무성한 푸르름에 압도당할때도 다가오는 가을 낙엽의 지겨움을 미리 느껴야했다.
주유소 앞에 늘어선 7~8수의 느티나무는 애증의 존재이다.
겨울 나목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가을의 짜증을 읽어 내고,
봄 생명이 움트는 신비로움 속에서도 가을의 공포를 잊지 않게 한다.
늘상 삶에 메여있는 나에게 계절의 오고감을 알려주는 나무련만 사랑만 하기에는 버겁다.
오늘도 긴 장대를 들고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좀더 들러 붙어 있는 나뭇잎까지 털어서 쓸고자.
지나는 차량에서 차창밖을 내다보던 이들의 눈에는 멋도 모르는 무지막지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그러나 어쩌랴, 가을을 넘기는 지혜라면 지혜인 꼼수인것을!
도심의 인도에 널브러진 낙엽은 미화원아저씨들이 하루 왼종일 쓸고 또 쓸어서 치운다.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이곳은 찻길만 쓸지 인도는 단 한 번도 쓸어준 적이 없었다.
요즘 이곳 담당 미화원 아저씨가 바뀌어서 주유소 앞 인도를 쓸어 주시는 것이 고맙고 미안해서 쫓아나가 같이 쓸었드랬다.
그 다음날부터는 일체 쓸어주지를 않는다.
그러려니 했다.
그분들 낙엽이 얼마나 지겹겠는가?
우리가 그분들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누가 할 수 있을건가?
도심 인도는 청소하는데 변두리 인도는 청소하지 않는 것이 늘 불만이었었다.
미화원아저씨 개인에게 하는 불만이 아니라 인원을 보강하지 않는 시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어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앞주유소 두곳의 인도는 미화원 아저씨가 열심히 낙엽을 쓸고 있었다.
아하! 우리는 여태껏 모르고 있었구나.
우리 주유소 앞은 우리가 열심히 낙엽을 쓸어대니 그냥 지나쳐 간다는 사실을.
그분의 노고를 이해하면서도 심술이 나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오늘 아침 출근해서 다시 빗자루를 들고 열심히 열심히 낙엽을 쓸었다.
장대를 들고 나뭇가지를 흔들어서 쓸었건만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도루묵이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쓸어 줄 기미가 안보이는 미화원 아저씨에 대한 서운함이나
장대로 흔들어도 들러붙어 있다가 얄밉게 나풀거리며 뒤에 떨어져 내린 낙엽을 원망해도
내 속만 탈 뿐인걸.
그래 결심했다.
이가을에 남들은 단풍구경도 가는데 말뚝에 메어있는 송아지처럼 메여서
낙엽원망이나 해대는 이 참담함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로.
다음번 출마하실 시장후보가
사철 푸르른 상록수로 가로수를 갈아치우는 공약을 내건다면
아낌없이, 망설임 없이 내 한표를 기꺼이 헌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