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함의 기준이란 뭘까?
시내에 들러 집에 오는 길에 시외로 가는 버스를 타게되었다.
운전자가 여성이었고, 평소부터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은 승객이 내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담소를 나눴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곧 있을 선거이야기부터 편히 살지 일은 왜하냐며 서로 겉도는 인사치레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승객분이 피곤하겠다고 인사를 하자
그때부터 운전자가 자신의 노동강도에 대해 줄줄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촌 노인들이 몸이 불편하니 승하차시에 시간을 너무 끈다는 넋두리에 보태서
오늘은 ㄱㅁ장인데 날씨가 풀려 포근하니 동네 노인들이 죄다 쏟아져 나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집에 가만히 있지 왜 나와서 자신을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해댔다.
승객분이 '그래도 잘 해줘라, 그래야 담에 감따위등 먹거리들을 얻어 먹을 것 아니냐'라며
운전자에게 한마디 한다.
운전자가 '촌 노인들이 순박한 정이 있다는 것은 다 옛말이라'고 하며
장에 나가서 푸성귀 하나라도 팔아 돈으로 바꾸려고 옛날처럼 나눠먹는 순박함은 없어진지 오래라며
'왜들 그렇게 아득바득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촌 노인들의 척박해진 인심을 나무란다.
손톱이 다 빠지도록 일하며 먹지도 입지도 않고 모은 재산들을
사회에 기부하는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없단다.
그 기부금은 어떤곳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평소에 자신과 이웃들과의 나눔에는 인색한 사람들이 기부하는 행위는 미련함이라고 쏘아부친다.
난 집앞에 왔기에 내렸지만 그들의 다음대화들도 안들어도 오디오일 것 같다.
시골 사람들의 순박함의 기준이란 뭘까?
그냥 애써 농사 지은 것들을 도시의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퍼 줘야 순박함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일까?
툴툴대는 버스 운전자들에게 굽신거려야 시골 노인들의 격에 맞는 순박함 일까?
거동이 조금 불편하면 그냥 집에 콕 박혀 있거나 알아서 자가용으로 출입해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과 운전자에게 예의를 차릴 줄 아는 순박함이 있다고 해야하나?
시골 사람들 특히 노인 농부들이 짓은 농사의 수고가 얼마나 피나는 것인지 생각은 해보고서
그 수확물을 나눠주는 유무로 순박함이나 정의 유무를 판단하는가?
그렇다면 도시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돈으로 환산되는 수확물을 농촌의 사람들에게
그냥 한 주먹씩 쥐어 줘야 순박하다고, 정이 있다고 해야하지 않겠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걸 불평하는 젊은 승객들도 머지 않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되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인 이상 어느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좀 참자. 나도 언젠가 내 후대의 젊은이에게 느림의 피해를 줄 것이기에 먼저 빚을 놓아 두자.
버스 운전자는 그 시골 노인들이 없다면 자신은 뭘 하고 있을까?
뭔가 다른일을 하고는 있겠지만 그 버스 운전석에는 앉아 있지 않겠지.
이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도처에 널려있다.
상대가 내가 있음을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음을 내가 고마워하며 살자. 제발!
기부에 대한 생각은 좀더 해 봐야 하겠다.
그러나 그 아린 삶에서 나온 기부금이 금액의 다소를 떠나 값지다는 것과
그 쓰임이 바르게 흐르도록 참여하는 것은 기부도 못하는 나와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