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냥 빚까지는 아닐지라도
요즘 친정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관계로 화분에 물을 주러 이틀 걸러서 아침마다 주암엘 다닌다.
아침 일찍 나가는 차는 별 손님들이 없는데 반해 들어 올 때는 버스가 늘 만원이다.
어렵게 자리를 차지 할 때도 있으나 오다가 보면
곳곳에서 버스에 오르는 노인분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
아침잠이 모자라 좀 앉아 오면서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에 눌러 앉아 있을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늘 마음은 편치않다.
송광쪽이나 광천쪽에서 타는 사람들은 한 시간 남짓 걸리고
나도 사십여분이 넘게 버스를 타야 한다.
나이든 어르신들도 힘들겠지만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이들도 내내 서서 시내까지 온다면
다리가 뻐근하게 힘든 거리로서 만만치 않다보니
젊은 사람들에게 대놓고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오늘 아침 버스는 유난히 붐볐다.
내가 버스를 탄 지점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통로에 서 있었고
계속 곳곳 동네 앞에서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다.
할머니들은 버스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곳이면 의자인냥 생각하고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으신다.
시내가 가까워 올 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버스에 올랐다.
연로하신 그러나 그런대로 서서 시내까지 가실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어르신이 버스에 오르셨다.
둘러 보아도 모두 자리를 양보해 줄 사람은 없고,
내가 서 있는 앞자리에 지팡이를 걸어 놓으시며 그자리에 앉은 여자분께
'당신님 내리면 내가 앉아서 가겠소'라며 압박(?)을 하셨다.
내 옆 의자에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계속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시내도 가까웠고 해서 "학생, 저 어르신께 자리 좀 양보해 드리지."라고 자리양보를 강권을 했다.
그 여학생은 뽀로통한 얼굴로 마지 못해 일어났고
그 어르신은 아주 천천히 그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젊잖게 앉으시고는 그걸로 끝이었다.
머쓱해진 내가 그 여학생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지만
그녀의 기분을 상쾌하게 되돌릴 수는 없었다.
부실한 다리와 켜켜이 쌓인 세월을 핑계로 좀 솟아 오른 곳 어디에나
엉덩이를 들이미는 여성 노인분들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연세를 권력삼아 당연하다는 듯이 젊은 사람들의 양보를 받아 챙기는 어르신들은 정말 마음을 상하게 한다.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고 했듯이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참 쉬운 우리말들 한 마디가
젊은이들에게 어른을 공경하는 걸 즐겁게 할 수 있게 하는 윤할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천냥 빚은 아니라도 그래도 젊은이들의 수고를 빌렸으면 응당 답례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나도 한 살 한 살 나이가 쌓여가면서 참 쉽고 정다운 우리말을 인색하게 쓰게 될까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