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라가 졸라 좋아
어제 퇴근 때 횡단 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느라 잠깐 서 있는데
대여섯명의 여학생들이 빙 둘러서서
말의 서두에 '졸라'를 쓰는 것이다.
그다지 불량스럽지도 않아 보이고 예쁘기도 하여
'학생들 내일 졸라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 봐'라고 말을 붙였다.
한 여학생이 '우리도 아는데요'한다.
'안다고? 그러면 안 써야지. 예쁜 학생들이 그런 말 쓰면 되나'고 했더니
내말이 떨어지면 흙고물 뭍을까봐 냉큼 맞받아 친다.
'습관이 돼서요'
어떻게 이 애들에게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 시킨단 말인가.
나의 한계점을 자각하고 암말 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별 시답잖은 어른 하나 제압했다고 자축이라도 하는 듯
빙 돌려가며 '졸라'를 정말 졸라 써댄다.
그중 압권인 말 '졸라가 졸라 좋아'
요즘 시크릿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전효성이
'민주화'라는 단어의 본래의 뜻은 모른체 인터넷 용어를 정말 말의 본 뜻인 줄 알고
라디오 방송에서 일상 쓰던 대로 쓰다가 혼쭐이 나고 있나 보다.
윤창중의 빅쇼가 아니었으면 여론이 악화되어 연예 활동에 큰지장을 초래 할 수도 있었겠다.
아니 이 정도면 조용히 책상 앞으로 돌아가 우리 현대사와 국어 공부에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커나는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가늠하지 못한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 어떤 사회적 지위에 있게 될지 아직 모른다.
그러므로 더더욱 바른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쓰는 어휘에 따라 그사람의 격을 가늠해 보는 것이 인간의 말하는 기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제 졸라를 졸라 썼던 여학생 중
유명 연예인이 되어 마이크 앞에 설 사람도 있을 것이고,
대 기업가의 오너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무언가 글로벌 인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입에 붙은 어휘들은 좀처럼 떨쳐내기 어렵다.
어제 내 뒤통수에 대고 고소를 음미하던 그 여학생들은 모를 것이다.
근사하게 자신의 격에 맞게 겉치장을 하고서는
전효성의 '민주화' 라는 단어처럼
적절한 추임새라고 생각하면서
'졸라'를 '졸라' 써버리고서는 주워 담지 못해 짤쩔 맬날이
자신들의 미래 어느날의 삽화가 될 것을 예약해 놓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