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와 불륜
늘 아침은 바쁘다.
20분만 일찍 일어나면,
10분만 꾸물거리지 않아도
종종거리지 않을 것인데도 늘 반복한다.
비닐하우스 화분에 물을 주고
바쁜 출근길을 재촉한다.
구 세무서 삼거리는
시내버스가 역방향으로 운행한다.
비교적 많은 노선이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검색하니 15~8분을 기다려야 한다.
걸어서 중앙시장 정류장까지 가야겠다고
서둘러 신호가 바뀌기 전에 길을 건넜다.
저만치서 역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쪽 두 번의 신호 무시 무단횡단을 해서
저 버스를 탈것인가,
아니면 준법 시민이 될것인가를 순간 결정해야 했다.
이미 내 눈은 달려오는 차를 살피고 있다.
지각 출근을 안하려면 요 수 밖에 없다는 핑계를 방패 삼아 무단 횡단을 단행했다.
삼거리라서 두 도로를 연달아 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드는 생각.
운전자들은 내가 무단횡단을 하는 이유를 모른다.
위험하며 범법을 했다는 사실만 목격하고 판단한다.
나는 피치 못할 나만의 이유가 있다.
분륜과 로맨스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만인이 로맨스라고 인정하지 못하면서
남의 아픔까지 동반해야하는 사랑은
어떤 말로 포장해도 불륜이다.
지각 출근을 핑계로 무단횡단을 한 나는 범법자다.
몇년전
큰아이가 임용시험을 앞두고 예비군 동원훈련 통지서를 받았다.
곧 치룰 시험공부에 매진해도 빠듯한 때에
입소 훈련을 받다니,
부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농작물 태풍 피해 지역이라서
서류를 제출하면 훈련 소집 면제를 해준단다.
농사는 우리가 지었고,
태풍 피해 신고는 아버님 명으로 했기 때문에
아들놈은 소집 면제를 받을 수 없었다.
서류를 제출하면서
아들놈은 거름 한 자루 나르지 않아서
농작물 태풍 피해와 하등 상관 없는데
시험 응시 편의를 위해 편법을 쓰는 것 같아
양심이 찔렸었다.
딱한 사정이지만 훈련 소집 면제를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지역 중대장님의 전화 통지를 받고
한 편으로는 후련했었다.
그러나 편법을 쓰려했던 나의 비양심적 행동이
지워진것은 아니다.
요행히 서류가 통과 되었다면 난 그걸 아들과 같이 받아 들였을 것이다.
편법을 쓰고자 했던 것 자체가 범법이고 불륜이다.
난,
남의 범법, 일탈, 어긋남에는
엄격한 잣대와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그러나 나의 행동에는
늘 잡다한 이유를 붙이며
로맨스임을 알아달라고 항변한다.
둘째놈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아들놈은 위로 대신
나의 잘못을 조목조목 들이댄다.
둘째놈의 '엄마는 문제가 있어. '라는 충고를 겸허히 받아 들인다.
그러나 다시 내일 또 나는
'나만은 진짜 로맨스야!'라고 외칠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반성하면서
남과 나에게 각기 다른 잣대와 칼날의 치수를 줄여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