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10> 사포 - 열 번째 뮤즈
사랑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최초의 서정시인, 뮤즈였으나 외설이 된…
효시 의견 분분하지만 실력은 최고, 플라톤 "그녀는 열번째 뮤즈" 칭송
고향 레스보스에서 여제자들과 애정,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의 어원으로
어떤 분야에서든, 처음 곧 최초는 명예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그것이 사악한(?) 일일 경우에도, 당사자는 그것을 자랑스레 여길 수 있다. 9ㆍ11 테러 주체들은 자신들이 비행기 자살테러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행한다고 뻐겼을지 모른다.
물론 이 주장에는 태평양전쟁 때 죽은 가미카제의 영혼들이 항의할 것이다. 하물며 좋은 것의 시초야 명예롭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일에는 효시(嚆矢)가 있다"고 말할 때 그 효시라는 말에는 어떤 아우라가 실려 있다. 알다시피 효시는 사물의 맨 처음이라는 말이다. 글자 뜻은 '소리 나는 화살' '우는살'이지만, 옛 중국에서 개전(開戰)의 신호로 우는살을 쏘았다 해서 사물의 처음을 뜻하게 됐다. " < 홍길동전 > 은 한국어 소설의 효시이다"에서처럼.
서정시의 효시는 뭘까? 다시 말해 최초의 서정시인은 누굴까? 이런 우문(愚問)도 없으리라. 이 물음에는 어떤 텍스트를 서정시로 확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언제 또 새로운 문헌이 발견될지 알 수 없다는 고고학적 문제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의 음악성과 정감을 깨달은 뒤부터 최초의 기록된 서정시(조차 확정할 수 없지만)가 쓰이기까지 수없이 많은 서정시적 텍스트가 씌어졌을 것이고 망실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최초의 서정시인으로 흔히 사포(기원전 620~기원전 565)를 거론한다. 제 이름으로 서정시를 여럿 남긴 최초의 시인이라는 뜻일 테다. 물론 이것은 그릇된 상식이다. 이 고대 그리스 여자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정시(라고 여겨지는 것)를 썼을 테고, 그녀의 동시대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서사시인으로 일컫긴 하지만 호메로스만 하더라도 사포보다 거의 200년 전 사람이고, 사포의 동시대에도 서정시인은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포가 동시대 시인 아르카이오스와 시를 서로 교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사포를 '최초의' 서정시인이라 일컫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포를 '최초의' 서정시인이라 함은 그녀가 예로부터 그녀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서정시인이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테다. 또 이것은 순전히 유럽 중심의 관점이다.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려 정리했다는 < 시경(詩經) > 에 수록된 시들 가운덴 사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창작돼 기록된 시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상투적 진술에 따라 사포를 최초의 서정시인으로 여기자. 그 진술이 정확하지 않다 해도, 그릇된 상상 속에서나마 어떤 일의 효시를 여성이 해냈다는 사실은 인류의 반에게 자부심이다.
알렉산드로스제국 시대에는 그녀의 시가 아홉 권으로 분류되었고, 제1권에 1,320행이 수록돼 있었다 한다. 사포는 대단한 다작 시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650행 가량이다. 사실 이만한 분량이 남아있는 것만 해도 행운이다. 앞질러 말하자면, 그녀 시의 상당수는 그 동성애적 함의 때문에 인위적으로 멸실됐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현전하는 사포의 서정시들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포가 최초의 서정시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맨처음 것이 뛰어나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사포의 시가 훌륭했다는 근거로 내세우는 평가 가운데 플라톤이 했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뮤즈가 아홉 명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경솔한가! 잘 봐라, 레스보스 출신의 사포가 있다. 그녀가 열 번째 뮤즈다."
잘 알다시피 뮤즈는 시나 음악, 학예를 주관하는 아홉 여신이다. 그래서 영어로도 보통 'the Muses'라고 복수로 표현한다. 플라톤은 사포 서정시의 경지를 시와 음악의 신에게까지 견준 것이다.
사포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레스보스 섬 미틸레네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정치적 혼란에 휘말려 다른 귀족들과 함께 시칠리아 섬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린 소녀들을 모아 시와 음악을 가르쳤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게르퀴라스라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해서 딸을 하나 두었다고 전해진다.
유럽어에서 여성동성애를 뜻하는 말(예컨대 영어의 새피즘ㆍsapphism이나 레즈비어니즘ㆍlesbianism)의 어원은 이 여성시인의 이름 사포와 그녀의 고향인 레스보스 섬이다.
사람 이름 뒤에 '-ism'(이나 이와 비슷한 형태의 접미사)을 붙여 그 사람의 이념이나 행태를 표현하는 것은 유럽어에서 흔한 일이다. 마르크시즘이나 프로이디즘이나 마오이즘 같은 말은 우리 귀에도 익숙하다.
이런 말들의 어원이 되는 데 별다른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당신도 자신의 이름에 '-ism'을 붙여 어떤 이념의 교주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저널리즘(이것도 '-이즘'이군. 이 말의 앞부분은 '날'이라는 뜻이다. 매일매일 기록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다)에서는 무수한 '-이즘'이 출몰한다.
카스트로이즘(피델 카스트로), 클린터니즘(빌 클린턴), 골리즘(샤를 드골), 레이거니즘(로날드 레이건), 블레어리즘(토니 블레어), 매카시이즘(조지프 매카시), 대처리즘(마거릿 대처), 티토이즘(요시프 브로즈 티토), 트로츠키이즘(레온 트로츠키)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이 많은 '-이즘'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류머티즘'(!)이라는 농담도 있다.
이때, 이런 이념이나 운동 명칭의 기원이 된 이름을 에포님(eponym)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포'는 '새피즘'의 에포님이고, '레스보스'는 '레즈비어니즘'의 에포님이다. 에포님에 꼭 '-이즘'이 따라 붙는 것은 아니다. 적잖은 과학자들은 그 이름 자체로 과학 분야 단위의 에포님이 됐다.
전류 단위 암페어(A)의 앙드레-마리 앙페르, 전하량 단위 쿨롱(C)의 샤를 오귀스탱 드 쿨롱, 진동수 단위 헤르츠(Hz)의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 일과 에너지 단위 줄(J)의 제임스 프레스콧 줄, 전력 단위 와트(W)의 제임스 와트, 전압 단위 볼트(V)의 알레산드로 볼타, 압력 단위 파스칼(Pa)의 블레즈 파스칼, 방사능 단위 베크렐의 앙투안 앙리 베크렐(Bq), 힘의 단위 뉴턴(N)의 아이작 뉴턴 따위가 그 예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새로 발견된 원소 이름에 제 이름을 에포님으로 빌려주었다. 보리움(Bh, 107)의 닐스 보어, 페르미움(Fm, 100)의 엔리코 페르미, 로렌시움(Lr, 103)의 어니스트 로렌스, 멘델레비움(Md, 101)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노벨리움(No, 102)의 알프레드 노벨, 뢴트게니움(Rg, 111)의 빌헬름 뢴트겐처럼.
그러면 과연 만년의 사포가 레스보스에서 여제자들과 동성애를 실천했을까? 거의 확실하다. 많은 문헌이 사포의 동성애를 기록하고 있다. 그 문헌 가운데 대부분은 사포 자신의 시다. 그 사랑이 정신적 사랑만이 아니라 육체적 사랑까지를 포함했음은 물론이다.
사포 시절에 동성애는, 여성동성애든 남성동성애든, 아무런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시대의 레스보스에 일종의 여성해방이라 할 만한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질문을 이리 바꿔보자, 그러면 사포는 동성애자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양성애자라는 규정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녀는 결혼까지 해 딸을 두었고 뭇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적잖은 이성애자들은 잠재적 양성애자들이다. (아닌가?) 플라톤이 열 번째 뮤즈라고 상찬했던 사포의 시들을 1703년 비잔틴 주교는 대량으로 불태웠다. 그 주교에게는 동성애적 뉘앙스가 곧 외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포는 뒷날의 숭배자들에게 아프로디테(비너스)에 견줄 만한 미인으로 상상돼 왔다. 그녀의 딸 클레이스가 '황금꽃처럼 아름다웠다'고 전해지고 있는 걸 보면, 그 어머니가 미인일 가능성이 크겠다.
실제로는 추녀였다 하더라도, 서정시의 여제(女帝)에게서 미적 결핍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터이다. 사포의 죽음에 대해선, 미틸레네의 선원 파온과의 비련에 절망해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그것도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이 빚어낸 낭만적 이야기일 수 있겠다.
최초든 아니든, 사포가 매우 뛰어난 서정시인이라는 점에 많은 고전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녀는 새로운 리듬과 운율을 창조해냈고, 서정시의 여러 갈래에 손을 댔다. 그녀는 사랑과 미의 시인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인간 존재를 휘두르는 열정의 기록자였다는 뜻이다. 그런 그녀에게 늙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내겐 이제 목소리가 없네, 내겐 이제 혀가 없네, 내 언어는 부서지고 마네, 미세한 불꽃이 내 살갗 아래 흐르네, 내 눈은 더 이상 볼 수가 없네(....) 오한이 내 몸 전체를 뒤덮네, 나는 풀보다 더 푸르러지고, 죽음 바로 곁에 있음을 느끼네."
효시 의견 분분하지만 실력은 최고, 플라톤 "그녀는 열번째 뮤즈" 칭송
고향 레스보스에서 여제자들과 애정,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의 어원으로
어떤 분야에서든, 처음 곧 최초는 명예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그것이 사악한(?) 일일 경우에도, 당사자는 그것을 자랑스레 여길 수 있다. 9ㆍ11 테러 주체들은 자신들이 비행기 자살테러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행한다고 뻐겼을지 모른다.
"모든 일에는 효시(嚆矢)가 있다"고 말할 때 그 효시라는 말에는 어떤 아우라가 실려 있다. 알다시피 효시는 사물의 맨 처음이라는 말이다. 글자 뜻은 '소리 나는 화살' '우는살'이지만, 옛 중국에서 개전(開戰)의 신호로 우는살을 쏘았다 해서 사물의 처음을 뜻하게 됐다. " < 홍길동전 > 은 한국어 소설의 효시이다"에서처럼.
서정시의 효시는 뭘까? 다시 말해 최초의 서정시인은 누굴까? 이런 우문(愚問)도 없으리라. 이 물음에는 어떤 텍스트를 서정시로 확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언제 또 새로운 문헌이 발견될지 알 수 없다는 고고학적 문제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의 음악성과 정감을 깨달은 뒤부터 최초의 기록된 서정시(조차 확정할 수 없지만)가 쓰이기까지 수없이 많은 서정시적 텍스트가 씌어졌을 것이고 망실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최초의 서정시인으로 흔히 사포(기원전 620~기원전 565)를 거론한다. 제 이름으로 서정시를 여럿 남긴 최초의 시인이라는 뜻일 테다. 물론 이것은 그릇된 상식이다. 이 고대 그리스 여자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정시(라고 여겨지는 것)를 썼을 테고, 그녀의 동시대인들도 그랬을 것이다.
서사시인으로 일컫긴 하지만 호메로스만 하더라도 사포보다 거의 200년 전 사람이고, 사포의 동시대에도 서정시인은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포가 동시대 시인 아르카이오스와 시를 서로 교환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사포를 '최초의' 서정시인이라 일컫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포를 '최초의' 서정시인이라 함은 그녀가 예로부터 그녀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서정시인이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테다. 또 이것은 순전히 유럽 중심의 관점이다.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려 정리했다는 < 시경(詩經) > 에 수록된 시들 가운덴 사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창작돼 기록된 시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상투적 진술에 따라 사포를 최초의 서정시인으로 여기자. 그 진술이 정확하지 않다 해도, 그릇된 상상 속에서나마 어떤 일의 효시를 여성이 해냈다는 사실은 인류의 반에게 자부심이다.
알렉산드로스제국 시대에는 그녀의 시가 아홉 권으로 분류되었고, 제1권에 1,320행이 수록돼 있었다 한다. 사포는 대단한 다작 시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650행 가량이다. 사실 이만한 분량이 남아있는 것만 해도 행운이다. 앞질러 말하자면, 그녀 시의 상당수는 그 동성애적 함의 때문에 인위적으로 멸실됐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현전하는 사포의 서정시들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포가 최초의 서정시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증이 될지도 모른다. 맨처음 것이 뛰어나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사포의 시가 훌륭했다는 근거로 내세우는 평가 가운데 플라톤이 했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뮤즈가 아홉 명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경솔한가! 잘 봐라, 레스보스 출신의 사포가 있다. 그녀가 열 번째 뮤즈다."
잘 알다시피 뮤즈는 시나 음악, 학예를 주관하는 아홉 여신이다. 그래서 영어로도 보통 'the Muses'라고 복수로 표현한다. 플라톤은 사포 서정시의 경지를 시와 음악의 신에게까지 견준 것이다.
사포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레스보스 섬 미틸레네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정치적 혼란에 휘말려 다른 귀족들과 함께 시칠리아 섬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린 소녀들을 모아 시와 음악을 가르쳤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게르퀴라스라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해서 딸을 하나 두었다고 전해진다.
유럽어에서 여성동성애를 뜻하는 말(예컨대 영어의 새피즘ㆍsapphism이나 레즈비어니즘ㆍlesbianism)의 어원은 이 여성시인의 이름 사포와 그녀의 고향인 레스보스 섬이다.
사람 이름 뒤에 '-ism'(이나 이와 비슷한 형태의 접미사)을 붙여 그 사람의 이념이나 행태를 표현하는 것은 유럽어에서 흔한 일이다. 마르크시즘이나 프로이디즘이나 마오이즘 같은 말은 우리 귀에도 익숙하다.
이런 말들의 어원이 되는 데 별다른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당신도 자신의 이름에 '-ism'을 붙여 어떤 이념의 교주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저널리즘(이것도 '-이즘'이군. 이 말의 앞부분은 '날'이라는 뜻이다. 매일매일 기록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다)에서는 무수한 '-이즘'이 출몰한다.
카스트로이즘(피델 카스트로), 클린터니즘(빌 클린턴), 골리즘(샤를 드골), 레이거니즘(로날드 레이건), 블레어리즘(토니 블레어), 매카시이즘(조지프 매카시), 대처리즘(마거릿 대처), 티토이즘(요시프 브로즈 티토), 트로츠키이즘(레온 트로츠키)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이 많은 '-이즘'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류머티즘'(!)이라는 농담도 있다.
이때, 이런 이념이나 운동 명칭의 기원이 된 이름을 에포님(eponym)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포'는 '새피즘'의 에포님이고, '레스보스'는 '레즈비어니즘'의 에포님이다. 에포님에 꼭 '-이즘'이 따라 붙는 것은 아니다. 적잖은 과학자들은 그 이름 자체로 과학 분야 단위의 에포님이 됐다.
전류 단위 암페어(A)의 앙드레-마리 앙페르, 전하량 단위 쿨롱(C)의 샤를 오귀스탱 드 쿨롱, 진동수 단위 헤르츠(Hz)의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 일과 에너지 단위 줄(J)의 제임스 프레스콧 줄, 전력 단위 와트(W)의 제임스 와트, 전압 단위 볼트(V)의 알레산드로 볼타, 압력 단위 파스칼(Pa)의 블레즈 파스칼, 방사능 단위 베크렐의 앙투안 앙리 베크렐(Bq), 힘의 단위 뉴턴(N)의 아이작 뉴턴 따위가 그 예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새로 발견된 원소 이름에 제 이름을 에포님으로 빌려주었다. 보리움(Bh, 107)의 닐스 보어, 페르미움(Fm, 100)의 엔리코 페르미, 로렌시움(Lr, 103)의 어니스트 로렌스, 멘델레비움(Md, 101)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노벨리움(No, 102)의 알프레드 노벨, 뢴트게니움(Rg, 111)의 빌헬름 뢴트겐처럼.
그러면 과연 만년의 사포가 레스보스에서 여제자들과 동성애를 실천했을까? 거의 확실하다. 많은 문헌이 사포의 동성애를 기록하고 있다. 그 문헌 가운데 대부분은 사포 자신의 시다. 그 사랑이 정신적 사랑만이 아니라 육체적 사랑까지를 포함했음은 물론이다.
사포 시절에 동성애는, 여성동성애든 남성동성애든, 아무런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시대의 레스보스에 일종의 여성해방이라 할 만한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질문을 이리 바꿔보자, 그러면 사포는 동성애자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양성애자라는 규정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녀는 결혼까지 해 딸을 두었고 뭇 남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적잖은 이성애자들은 잠재적 양성애자들이다. (아닌가?) 플라톤이 열 번째 뮤즈라고 상찬했던 사포의 시들을 1703년 비잔틴 주교는 대량으로 불태웠다. 그 주교에게는 동성애적 뉘앙스가 곧 외설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포는 뒷날의 숭배자들에게 아프로디테(비너스)에 견줄 만한 미인으로 상상돼 왔다. 그녀의 딸 클레이스가 '황금꽃처럼 아름다웠다'고 전해지고 있는 걸 보면, 그 어머니가 미인일 가능성이 크겠다.
실제로는 추녀였다 하더라도, 서정시의 여제(女帝)에게서 미적 결핍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터이다. 사포의 죽음에 대해선, 미틸레네의 선원 파온과의 비련에 절망해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그것도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이 빚어낸 낭만적 이야기일 수 있겠다.
최초든 아니든, 사포가 매우 뛰어난 서정시인이라는 점에 많은 고전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녀는 새로운 리듬과 운율을 창조해냈고, 서정시의 여러 갈래에 손을 댔다. 그녀는 사랑과 미의 시인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인간 존재를 휘두르는 열정의 기록자였다는 뜻이다. 그런 그녀에게 늙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내겐 이제 목소리가 없네, 내겐 이제 혀가 없네, 내 언어는 부서지고 마네, 미세한 불꽃이 내 살갗 아래 흐르네, 내 눈은 더 이상 볼 수가 없네(....) 오한이 내 몸 전체를 뒤덮네, 나는 풀보다 더 푸르러지고, 죽음 바로 곁에 있음을 느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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