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풍경

용문이

소띠여사 2011. 11. 9. 12:17

용문이는 만년 소년이고 가수이다.

늘 어른(자신의 기준으로 구별)을 보면 '안녕하세요?'라고 허리굽혀 인사하고,

어린사람들을 보면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소형차나 트럭들을 보면 손을 흔들고, 근사한 자가용을 보면 허리굽혀 깍듯이 인사한다.

늘 유쾌하다.

신 구곡을 망라하는 트롯의 백과사전이다.

용문이가 모르는 노래가 있을 듯 싶지 않다.

그 멜로디며 리듬, 가사, 꺽는 기교 등등을 어떻게 습득하고 잊지 않는지 신기롭다.

저절로 흥이나면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노랠 목청껏 불러제낀다.

세상살이의 고단함이나 부대낌은 용문이는 모르는듯 싶다.

늘 즐겁고 늘 부지런히 걸어다닌다.

 

내 고향의 용곡이라는 마을에 사는데 주암에서는 유명인사다.

20대 후반이라고도 하고 삼십을 훌쩍 넘겼다고도 하는데,

얼굴이나 키 하는 행동거지로보면 천상 10대 소년이다.

사시사철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다 보면 용문이가 있을 정도로

바지런히 창촌일대를 돌아다니며 인사하고 노래부른다.

 

제작년 초여름쯤 창촌에 있어야 할 용문이가 이곳 주유소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가는 빗방울이 쉼없이 내리는데 가방을 메고 우산은 돌돌말아 손에 들고

그 비를 다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깜짝놀라서 뛰어나가 이름을 불러 세웠다.

나는 저를 알아도 저는 나를 알리 없었건만 아무 저항없이 사무실로 따라 들어왔다.

비를 맞아서 오들오들 떠는 아이를 마땅한 옷이 없어서 윗옷만 주유원 옷으로 갈아입혔다.

옷을 갈아입히면서 보니

고모와 담임선생님 전화번호까지 적혀있는 명찰을 차고 있었는데

누구의 주선에 의해 선혜학교에 다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선혜학교 학생 명찰이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용문이가 비를 맞고 이곳에 있다고 전하니

거의 울것같은 목소리로

"고맙다, 미안하지만 택시에 태워서 보내달라, 택시비는 후불로 지불하겠다"는 부탁을 했다.

내가 차가 있다면 학교앞까지 태워다 주련만 그럴 수도 없는 처지여서

택시를 콜해서 용문이를 태워 보냈다.

선혜학교까지 후불로는 태워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만원의 택시비를 주면서 거스름돈은 필요없으니

이 학생을 꼭꼭꼭 선혜학교 교문앞 경비실에 내려달라고 부탁부탁해서 보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용문이가 학교에 오지 않으면 담임선생님이 내게 전화하신다.

용문이를 찾아봐 달라고....

모든일을 제처두고 용문이를 찾아 나서면 통학버스를 타는 곳 언저리에서 즐겁게 노랠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은 영 보이지를 않는다.

버스 타는 곳 앞 꽃집에 오늘 노래부르는 아이 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가방, 명찰 모두 벗어놓고 어디론가 가버려서 통학차가 물건만 챙겨서 갔다고 하셨다.

난감했다. 이 아이가 어디로 가버렸을까?

창촌에 계신 지인에게 연락을 해봤다.

용문이 지금 그곳에 돌아다니느냐고?

알아보고 전화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몹시나 더디게 가는 것이었다.

혹시나 영영 용문이가 우리의 곁으로 오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걱정때문에

더디 더디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다행히 용문이는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되돌아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노랠 불러제끼며 삶을 즐기고 있었단다.

 

걸어서 주유소엘 출근하면 용문이가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노랠 부르거나, 지나는 차에 일일이 자기만의 인사를 하거나, 어른들께 유쾌한 인사를 남발하고 있다.

그러는 용문이를 보고 나는 오늘 이곳에 꼭 앉아 있다가 학교차 타고 학교에 가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한다.

 

나는 내가 용문이를 알아도 용문이는 나를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오늘 걸어서 출근하면서 용문이를 만났다.

"용문이 안녕?"했더니

"어디가세요?"라고 한다.

"응 출근해!"

"저기 주유소에요?"라고 한다.

깜짝 놀라서 "내가 주유소에 출근하는지 알아?"했더니

"알아요, 저위에 있는 주유소"하는 것이다.

"친구 기다려서 학교에 잘가라"하고 오면서

용문이가 날 안다는 사실에 뛸듯이 기뻤다.

용문이는 알 것은 다 아는구나.

그동안 내가 용문이를 몰랐었구나.

오늘은 용문이를 다시 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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