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와 인접해 있는 중학교는 어린 우리들의 놀이터였었다.
달밤 운동장 구령대는 우리들의 무대였었고,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던 벗나무는 숨바꼭질 놀이의 은신처였으며 달콤한 버찌까지 덤으로 먹여 주었었다.
구령대에서 노래자랑과 연극을 했던 것도 재미났지만,
아름드리 벗나무에 기어 올라 숨어서 술래가 날 지나쳐가기를 기대하던 숨바꼭질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여름날 밤 학교 운동장은 어린 우리들을 키워주었었다.
노래하고 춤추며, 즉석에서 꾸며낸 이야기로 연극을 하면서 생각들을 키웠고
나무에 기어오르고 운동장을 뜀박질하면서 키를 키웠었다.
70년대 후반 어린 우리들의 숲이 사라져버렸다.
호남고속도로 옆에 있었던 학교라 울창했던 나무들이 수난을 당했었나보다.
새마을 운동-지붕계량사업-주택계량사업들이 몰아치던 시절이었었다.
고속도로 옆 마을사람들은 빚을 내어서 일률적으로 똑같은 이태리 주택을 어거지로 지어야 했었다.
그걸 대통령이 시찰하러 납시는 바람에 애꿎은 어린 우리들의 숲이 댕강댕강 잘려 나가 버렸었다.
삐죽삐죽 가시가 돋는 이름모를 침엽수가 정답던 벗나무를 대신했고,
다시 댐 기공식때 또 한번 나무들의 수난시대가 있었었다.
난 우리들 유년의 숲이 사라진 그곳을 무심히 아주 무심히 지나 다녔다.
요즘 버스를 기다리며 둘러보니 그곳에 다시 벗나무가 자리잡은 걸 알게 되었다.
옛친구 그 벗나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옛 벗나무처럼 울창하게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풍모를 갖춘 저 나무들이
또다른 어린친구들의 숲으로 사랑받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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