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잡초들이 내게 묻는다면,

소띠여사 2012. 7. 9. 13:21

 

 

감나무 밭 가장자리에 철쭉들을 심었다.

삼백여주가 넘게 심었었는데

이리저리 쫒겨다니다 죽고, 예초기에 잘려 죽고, 그냥 이유 모르게 시들시들 죽어나서

지금은 한 오십여주 살아 남았나 모르겠다.

 

처음 그애들을 사다 심을 때는 푸른 꿈도 광대하게 꾸었었다.

멋들어진 정원수로 가꿔서 누군가의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줄거라는 푸른꿈.

그런데 감나무 사이로 옮겨 심어 놓으니

그늘밑에서 햇볕에 굶주리고, 부실한 관리로 잡초들에 치여서 영 몰골이 나질 않는다.

 

어제는 철쭉들을 괴롭히는 잡초들을 죄다 뽑았다.

비가 적당히 와서 땅이 질거나 메마르지 않아 수월하게 잡초 제거를 할 수 있었다.

바래기와 이름을 알 수도 없는 여러가지 풀,

그리고 제일 나무에 피해를 주는 넝쿨 풀들을 모두 뽑고 쥐어 뜯었다.

우거진 풀들 속에 제비꽃이 포기포기 숨어서 크고 있었다.

키도 크지 않고 나무도 감지 않을 뿐더러 예쁜 꽃도 피워준다는 이유로 제비꽃은 그대로 놔 뒀다.

나무뿌리에 엉켜 난 제비꽃만 뽑고 그냥 나무밑에 난 제비꽃들은 자유롭게 나두면서 작업하다 생각하니

뽑혀 나간 풀들이 내게 항의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진짜 풀들이 내게 왜 제비꽃만 편애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나팔꽃과 이름도 모르는 넝쿨 풀에게는 할 말이 있다.

너희는 나무를 휘감아 못살게 구는 벌이고, 또 너는 사람들도 할퀴니 뽑힌다고.

바래기와 미국서 날라왔다는(?) 왕고사리 비슷하게 생긴 풀에게도 할 말이 있다.

너무 무성하게 커서 내 사랑하는 철쭉에게 햇볕을 가리니 뽑힌다고.

그런데 키도 납작하게 작고 노란 꽃도 피우는 토끼풀 비슷하게 생긴 풀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그냥 넌 가만히 놔두면 지천으로 번지니 뽑은다고 말하면 그 풀이 수긍할까?

불미나리와 쑥부쟁이에겐 뭐라고 말할까?

봄내 잘라다 먹을 때는 좋아했으면서 왜 뽑나고 항변하면?

 

뽑아도 다시 나고 조그만 뿌리가 남아 있어도 다시 부활하는 풀들.

그러나 애지중지 키우는 화초나 작목들은 조금만 부러지고 꺽여도 회생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

왜 우리만 뽑느냐고 풀들이 항변한다면,

그래 니들은 뽑아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 있기에 뽑는다라고 말해주면 답이 될까?

나도 솔직해야겠지.

제비꽃에게는 사심이 있다고,

언젠가는 화분에 옮겨 심어 제비꽃을 곁에 두고 보고싶어서 그러노라고.

제비꽃이 뽑혀 나가는 걸 더 꿈꿀지도 모르겠다.

화분 속에 갇힐 미래의 속박을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