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공부

경어(敬語)가 기가 막혀!

소띠여사 2012. 12. 4. 13:54

# 00 회사 고객 센터

~~~~~하는 회사입니다.

회원이면 1번을 누르시고 회원이 아니면 2번을 누르십시요.

선택.

A경우이면 1번, B경우이면 2번, C경우이면 3번, D경우이면 4번을 누르시오.

선택.

다시 반복 그리고 젤 뒤에 상담직원과 통화하고 싶으시면 0번을 누르시오.

0번 선택.

~~~~~하는 회사입니다. 2~3회 반복 자사 홍보 후

'고객님의 편리한 상담을 위해 대화가 녹음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들어야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말하는 진짜 사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딘가의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진짜 사람과 대화를 하려하면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늘상 거치는 관문이라 하더라도 ARS 전화는 짜증난다.

기다리는 짬짜미 길게 나열하는 자사 홍보.

그리고 나서 '대화가 녹음 될 수 있다.'라는 말은 짜증을 넘어 협박으로 들린다.

 

꾹 참고 문의 사항을 말하면

"고객님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라고 내게 묻는다.

황당 그 자체이다.

긴(?) 시간을 할애해서 자사 홍보 다 들어주고,

시키는 대로 1번 또는 2번 등을 선택했고,

까딱 말 잘못하면 어찌 해 버릴 테세로 녹음까지 당하면서 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하는데

기다려 줄꺼냐고 물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기다리겠다고 할까,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할까?

 

어느날 큰맘 먹고 응대하는 여자분께 말했다.

"제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절 보고 '기다려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 제가 어찌해야 할까요?"

"------"

"선택의 여지가 있을때는 물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금같은 경우에는 '기다려 주십시요.'라고 하세요."

"'주십시요.'는 명령어인데 어떻게 고객님께 명령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십시요.'는 명령어 뿐만이 아니라 부탁의 말도 되거든요."

"네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말 그 여자분이 내 말에 수긍했을지는 모르겠다.

다시 전화하면 바뀌지 않았다.

일률적으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아직도.

정말 고객님을 생각한다면 짜증나는 ARS 음성통화에 지친 고객에게

정중하게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알아보는 동안 기다려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정도로

부탁의 말을 해야 하는게 아닐까?

 

# 극장 매표소에서

우리집 근처의 슈퍼에는 예쁜 여학생이 물건 값을 계산하는 일을 한다.

공부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참 예쁘다. 정말 얼굴도 예쁘고.

물건을 사러가서 값을 치룰 때 꼭

'만 삼천원이세요.'라고 말한다.

가격에 '세요.'라는 말을 꼭 붙인다.

참 듣기 거북하다.

손님을 공경한다고 물건값까지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 학생에게 그럴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세요.' 대신에 '입니다.'를 쓰라고.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내 얼굴을 보고는 얼마까지 말하고는 끝말을 흘려버린다.

 

며칠전,

극장 매표소에서 지존을 한 분 만났다.

표를 파는 아가씨들 전부가 다 '세요.'는 기본으로 쓰고 있고

매점에서 팝콘을 파는 젊은 남자분에게서 경어의 최고봉을 만났다.

팝콘과 콜라를 주문한 내게

'팝콘 나오셨구요,'

 

경어법이 발달된 우리말.

어디까지 발전(?)될까?

'어륀쥐'를 외치며 우리말 교육을 홀대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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