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내가 만난 영화 [화려한 휴가]

소띠여사 2007. 7. 31. 13:39

영화의 한장면,

분명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한바탕의 왁자한 농지거리를 쏟아놓은 군중이 애국가를 부르자,

앞줄의 군인들이 한쪽무릎을 꿇고 거총자세를 취하고..........

영화 속 군중들이나 영화 밖 관중들이나  설마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내 아들을 생각했다.

지금 내 아들은 군복무 중이다.

내 아들도 위로부터 명령을 받으면 누군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길것이다.

쏘아야 하는가 쏘지 말아야 하는가는 내 아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아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명령으로

그냥 무정물의 군사용 무기가되어 무기를 다룰 뿐일 것이다.

 

영화 속 군인들, 아니 실재 그 때 그 곳에 있었던 수 많은 우리 국군사병들을 생각해 본다.

삼팔선을 넘어 주적을 향해 겨눠야 할 총구를

남녁땅 우리의 도시에서 내 부모형제 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난 그때 정말 남파간첩과 고정간첩을 소탕하고 그에 현옥된 폭도들을 몇명 혼내 준 줄 알았었다.

그때 그 패거리들이 방송과 신문과 기타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동원해서 내게 알려주었었으니까.

그들도 나처럼

시위대가 남파간첩과 고정간첩의 선동으로 폭도로 돌변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국가를 전복시키고 적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기에

자신의 총에서 불을 뿜게 했었겠지.

아니 위로부터의 명령이니 생각을 거세당한채 그냥 무정물의 군사용 무기가 되었겠지.

 

자신의 개인적 야욕을 위해서

시민을 폭도로 둔갑시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자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쏘게 만든

그 인간이 지금도 버젓이 같은 하늘아래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 몸서리치게 만든다.

 

이랜드 노사분규 뉴스를 보고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이해불가의 어떤 아저씨를 만났다.

이런 분들 영화 [화려한 휴가]를  한 번 보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전명이 [화려한 휴가]라는 것이라고 꼭 집어 말해 줘도 가슴을 치는 그 무엇을 느끼지 못하리라.

 

80년 여름 광주에 갔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었다는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충장로와 금남로는 5월 이전의 그대로 였었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었다.

금남로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서 노래테이프를 사기 위해 들렀었다.

뜨거운 햇볕이 도로를 태워버릴 듯 내리쬐는데

휴가나온 군인과 그 여자친구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가게주인아저씨가 하는 말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년 가랑이를 찢어 부러야 돼. 지금 누구 배채우라고 군인놈하고 손을 잡고 가는거야."

가끔 들리던 가게라서 그분이 그렇게 과격한 줄 몰랐었다.

왜그렇게 흥분하시냐고 물었건만 대답하지 않으셨다.

세상이 세상이라 저년이 버젓이 군인놈하고 놀아난다고만 한탄하셨다.

그 때 난 주인아저씨의 과민반응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우연히 들른 망월동 묘역에서 기록사진을 보고서야 그분의 분노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러웠던지......

 

<광주>에서의 죄는 사면당했다고 했던가?

그래 일사부재리라는 원칙을 적용해 주자.

그러나 명령만을 따르는 부하사병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운

더러운 죄는 아직 단죄하지 않았으리라.

절대 사면이 없는 법정에 세워서 단죄하고 싶다.

 

'우리들은 폭도가 아닙니다. 우리들을 잊지말아주세요'

소리 높여 부르짖었던 그때 그 분들과

분명 폭도가 아님을 알고도 명령이라는 허울에 총을 쏘았던 그때의 사병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더더욱 그 패거리들의 말을 믿었던 내가 너무나 죄스럽다.

 

그 다음해였던가,

불순대학생들이 잡지나 신문에 나오는 대통령 영정에 위해(눈이나 입등을 칼로 오려낸다는)를 가하니

잡지나 신문 등에 나오는 영정을 오려서

'깨끗한 장소에서 정중히 소각'하라는 명령을 나 또한 수행했다.

내게 이런 잡다한 일을 하게 하는 '불순대학생'들을 욕하면서.....

 

노사분규를 보고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내 아들도 총을 우리에게 겨누는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는 이땅에서

내 아들, 내 손자, 내 아들의 손자, 또 그의 손자 .....들이

80년 봄 광주의 그 국군사병들은 되게하지 말자.

제발 자각들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