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준비로 30여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다.
나는 친구를 기억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봐 조바심하며 나를 소개했다.
내 이름과 살던 동네를 말하고
"혹시 기억해? 나는 너가 너무 예뻐서 한번도 말을 걸어보지 못했는데...."
친구는 조금 생각하다가
"응 기억나. 너 단발머리였지?"하며 내 기억을 떠 올렸다.
친구가 기억해 주는 내 머리모양은 단발머리가 아니라 그때 우리들은 내 헤어스타일을 - 이발소에서 의자에 판자를 걸치고 올라 앉아 이발사 아저씨가 앞머리와 옆머리는 반듯하게 가위로 자르고, 뒷 머리는 기계로 정수리 조금 못미쳐까지 쳐올려주는 남자와 여자의 중간쯤 되는 머리모양을 - [고부깔]이라고 했었다.
난 이 머리모양이 너무 마음에 안들었지만 엄마를 아무리 졸라도 그때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미장원에 갈 수가 없어 난 초등시절 6년을 이 머리모양으로 다닐 수 밖에 없었으니 날 기억하는 친구가 엄경미=단발머리로 기억할 게다.
난 초등시절의 머리모양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내가 배냇머리를 한번 자르고 일곱살까지 한번도 가위질을 하지 못한(?외할아버지의 여성에 대한 고집으로) 머리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선생님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애는 남자처럼 빡빡머리로 밀어 버릴 거'라는 엄마의 귀뜸을 듣고는 처음으로 이발소에 가서 그 고부깔머리를 하게되었다.
그런데 학교에 가서 만난 정강숙친구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와서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내들심이 없었던 나는 그 친구에게 머리를 깍일거라는 귀뜸도 못해주고 하루이틀 마음만 바들바들 떨었었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그래도 강숙이는 반들반들 예쁜 머리채를 하고 다녔고, 그때서야 우리엄마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걸 알게되었다. 나와 형제들에게는 거짓말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거라고 가르치면서 혼을 내던 엄마가 내게 거짓말을 했다는것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들었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해하게 -쌍둥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가 내 머리 시중까지 들 여유가 없었을-되었지만,
그때는 그 거짓말로 인하여 엄마와 떨어져 살았던 유년의 외로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그 머리모양 거짓말은 엄마가 나를 다른 자녀와는 차별을 한다는 생각으로 굳어져서 자립심이 강한 아이인척 했었다. 우리식구들은 내가 아들 대신 씩씩하다고 매우 좋아했지만, 난 지금도 유년시절을 떠 올리면 아련한 외로움이 먼저 밀려든다.
어느날 순천에 살던 엄마집에 외할머니와 가게 되었을 때,
하늘거리는 빠알간 천을 내 다섯손가락에 걸어 리본을 만들어서 내 머리에 꽂아주었던 엄마.
난 늘 동경했었다. 아침마다 외할머니 무릎앞에서 아니면 외숙모 무릎앞에서 귀밑의 솜털머리를 아프게 잡아당겨 한갈래 쫑지머리를 땋을때 - 두갈래 머리나 아니면 풀어헤친 머리나 또 나풀거리는 진짜 단발머리를 해보는것이 소원이라고 울며불며 떼를 써도 외할아버지의 엄명을 어길 수 없는 할머니와 숙모는 절대로 내 머리를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난 엄마와 살게 되었을때 정말 내 소원대로 머리모양을 오늘과 내일과 모래가 색색이 달라질거라는 기대에 부풀었었는데, 난 귀밑머리부터 잡아당겨 땋던 쫑지머리에서 거침없이 고부깔머리로 옮겼다. 일곱살 이후 지금껏 긴 생머리를 나풀거려 볼 수 없었다. 학창시절 땐 교칙에 따르느라고 그 다음에는 인내심이 없어서 자르고 자르고....
예쁜 정희는
내가 아픈 추억이 있는 빠알간 리본을 머리에 꽂고 어느날 갑자기 내앞에 나타났다.
5학년 때던가?
정말 주위가 훤 할 정도로 예쁜 아이가 빨간 리론을 머리에 꽂고 있었는데
너무 예뻐서 그리고 내 마음속 아픔으로 머물러 있는 빨간리본을 꽂고 있어서
말도 붙일 수 없었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던 친구.
그애는 날 기억하고 있었다.
고부깔 소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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