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War- 빠가사리와의 교전

소띠여사 2008. 8. 9. 11:05

잦아드는 빗줄기를 뒤로하고 달렸다.

간간히 섬뜩이는 빛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하고

무기들을 점검하고 완전군장을 확인한 다음 행군을 시작했다.

 

물기를 머금어 칙칙 감겨오르는 풀숲 헤치고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려갔다.

등뒤에서 섬뜩이는 빛때문에 가슴이 오그라 들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그들의 나와바리를 향해서 진군했다.

 

그들을 공략하기가 가장 좋을 듯 싶은 곳에 진지를 틀었다.

지지대를 세우고,

의자를 펼치고,

적의 최후를 확인할 후레쉬를 머리에 쓰고,

우리의 무기를 조립했다.

 

그들을 공략할 포탄을 장착하고 적진 깊숙히 던져놓고

그들이 장렬히 나의 무기 끝에 항복하고 끌려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의 전쟁 말고

등뒤 산너머에서는 진짜 포화가 으르렁 거리는 큰 판이 벌어 졌나보다.

저멀리서 하늘을 가르고 번쩍거리며 흩어지는 빛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으르렁 거리는 굉음은 공포, 그자체다.

 

내가 누군가에게, 또는 세상에게 진 빚이 얼마나 많은지 기억해 낼려고 하니

너무나 보따리가 많아서 어떻게 끄집어내어 어느것부터 참회를 해야 할런지 갑갑하기만 했다.

산너머 전장이 곧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격전장을 옮겨 올 것만 같은데

그 시간이 언제쯤일지 조마조마한게

내 마음을 콩자반 졸이 듯 졸여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과 우리들과의 맞짱뜨기는 우리들의 승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걸려들지 않을 수 없는 무기를 우리가 개발(?)했으니

그들의 나와바리라 할지라도 맞짱뜨기의 결과는 우리의 승리로 끝나게 돼 있었다.

 

등뒤 산너머에서는 끈덕지게 장기전을 치루고 있었다.

때론 멀리서 불빛만 전해 올 때도 있었지만

무시무시한 불빛과 으르렁 거리는 포화의 음향까지 넣어서

나에게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의 여행을 부추겨 주는 친절함까지 베풀어 주었다.

어릴적 월남전 영화를 보며 느끼던 그 기분,

그래 딱 그 기분이다. 정말 내가 전장의 격전지 한복판에 미아처럼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이게 뭐야?"

"월남전 포화 속에서 지혜없이 이짓하는 미련곰퉁이가 우리 말고 또 있을라구!"

"너무 무서워."

등등등

구구절절 좔좔좔

포화가 터질 때 마다 내 입에서도 총알을 발사했다.

응수는 필수인 것이다.

 

월남전 격전지의 포화를 뚫고

그래도 우리는 그들이 응수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의 격전지를 지켰다.

그리고 승리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동료에게 최고의 한방을 날려버렸다.

"후조 각시는 절대로 우아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