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고 무료한 나날을 소비하고 있는 작은애에게
막내 숙모가 1시간짜리 알바를 주선해 주었단다.
그 1시간은 잉여인간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서 무조건 OK.
지 형에게 '낼 술 한 잔 하세. 내가 알바비 받아와서 한 잔 쏠께'라며 너스레를 떨기까지 한다.
퇴근하고 집에가니 형제가 잠에 취해 있었다.
머리맡에는 만원짜리 두 장이 상장처럼 펼쳐있었다.
-1시간에 2만원이나 벌어왔구나.
-엄마 시급보다 더 많이 벌었네.
참 대견하다.
뭔가 열심히하려는 아들이 활기차 보이고 믿음직스럽다.
곤히 자는 아들녀석들을 깨워서 청소를 하고 아빠를 맞을 준비를 부산히 했다.
남는 자투리 시간에 아들녁석들과 둘러 앉아 산타할아버지 경험담을 들었다.
산타 분장을 하고 1시간 남짓 유치원 원아들 한명 한명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안아주었단다.
두 살짜리 애들은 산타가 무섭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단다.
세 살 이상들은 산타할아버지를 즐기더란다.
TV에서 산타할아버지를 많이 봐온터라 '뭘 타고 왔느냐'고 물어서
동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루돌프를 타고 왔다고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루돌프 어디 있냐고해서 밖에 있다고 했더니 그냥 넘어가더란다.
인샷을 찍겠다고 나섰더라면 매우 난감했을 터.
듣고 있던 내가 '주차장에 주차 해 뒀다고 하지 그랬냐'했더니
큰애는 한 수 더 떠서 '77번 루돌프 타고 왔다고 하지'
셋이서 크게 웃었다.
77번은 우리집에서 신시가지에 있는 그 유치원으로 가는 버스 번호.
언제쯤 그 귀여운 아이들은
77번 루돌프를 타고 나타난 산타의 환상에서 깨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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