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품은 솔향기
- 송석 시세이집 하나
카스 친구님의 부탁으로 나를 위해 시집 [산이 품은 솔향기]를 감자 송석 작가님이 직접 ‘우리함께 웃어요.’라는 인사말까지 써서 보내주셨다.
참 오랜만에 마주한 시집이다.
마침 읽던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장을 어렵사리 넘기고 난 터라 반가운 맘으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장문의 문장을 읽는 책 읽기와 짧은 글의 시를 읽는 책 읽기는 사뭇 다르다.
소설 읽기를 등산에 비유할 수 있다면, 시 읽기는 산책에 비유해도 될런지 모르겠다.
소설은 작가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끈덕지게 걷는 것과 같다면, 시는 이 참견 저 참견 하면서 느린 걸음걸이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 것과 같다고 하면 나의 억지일까?
이 시집도 나의 방법으로 읽었다.
우선 오지랖을 펼쳐 보일려면 동네를 알아야겠지?
한 바퀴 휘 둘러 보았다.
내 마음이 쏠리는 고샅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제 마음 한 자락 내려놓았던 고샅에 다시 들러 본다.
참 포근하고 좋다.
<물 맑은 양평>
맑다
맑은 물로 목 축이니
목 또한 맑다
맑다
맑은 풍경 눈에 담으니
눈 또한 맑다
맑다
맑은 공기 몸으로 품으니
몸 또한 맑다
맑다
맑은 터 뒹군 어린 시절로
영혼 또한 맑다
시인님의 고향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짐작조차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읽힌다.
고향에 뿌리 내리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고향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가 참 쉽지가 않다.
붙박이로 고향에 살다보면 애증이 켜켜이 쌓여 그닥 사랑으로만 대할 수 없는 것이 고향인 것 같다.
그런데 시인님은 ‘맑은 터 뒹군 어린 시절로 영혼 또한 맑다’고 하신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양평 고향은 맑음(순수)으로 시인님과 같이하는 것 같다.
<씨감자>
내 몸이 썩어야
싹을 틔워
햇살과 만난다
내 몸이 썩어야
뿌리를 뻗어
땅의 기운을 담는다
내 몸이 썩어야
또 다른 내가 새로운 내가
만들어진다
세상의 부모들에게 바치는 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자식이면서 부모이다.
이 시를 읽으며 눈물이 핑 돌았다.
나를 위해 씨감자가 되어 주신 내 부모님은 잊으며 살고 있는 나.
내 자식을 위해 씨감자가 되려하면서도 오롯이 썩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나.
이 시집에는 자식이면서 부모인 우리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신 시 꾸러미가 많은 것 같다.
<천국에서 온 편지>의 남겨진 자식을 위로하는 떠난 부모의 심정과 <할머니>의 참 세상을 보는 맘 등은 울림이 크게 느껴진다.
<남겨진 날들에 고함>
이십대에는 몰랐습니다
삼십대에도 몰랐습니다
사십대가 돼서야
내 눈동자에 맺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오십대가 되면
그녀의 농동자에 맺힌
글귀를 읽을 수 있고
육십대가 되면
그녀의 심장의 울림을
해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칠십대가 되면
그녀와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팔십대가 되면
그녀와 하루하루를
감사의 마음으로 보내겠습니다
구십대가 되었을 땐
그녀 곁에서 자식들에게
미안한 삶이 되지 않기를......
이 시는 4~50대의 부부들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다짐하는 부부애가 물씬 묻어나는 시 같아서 참 좋다.
지난날 사십 앓이를 심하게 했었다.
사십년을 살아온 날들이 한 줌 거리도 못되는 것 같아 내 생이 송두리째 무의미 했었고, 앞으로 살아 낼 생이 버거워서 몹시 힘든 나날들이었었다.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남편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어 맘을 곧추세우고 일어나 바닥으로 가라앉는 날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지나고 있는 터널을 남편 또한 지나왔었는데 아무 말 없이 혼자서 뚫고 나왔었노라는 말에 미안도 하고 의지도 되었었다.
나만 겪는 특별한 마음 앓이가 아니라는 것에 혼자서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이 부끄럽기 조차 했다.
이제 서서히 갱년기 앓이가 시작될 징조가 보인다.
이번엔 잘 견뎌 내리라.
남편의 눈동자에 맺힌 힘겨움도 읽어내서 같이 뚫고 지나가야겠다.
올 가을 유난히 많이 열려서 천덕꾸러기가 된 감과 씨름하며 가을이 싫어지려 할 때 내게 온 [산이 품은 솔향기]가 내 마음에 가을향기를 흠뻑 쏟아주었다.
송 석 시인님도 카스 친구 한숙님도 청명한 솔향기로 내 마음을 씻어 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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