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첫째날을 이야기하다.

소띠여사 2006. 3. 8. 21:51

  2월 24일 난생 처음으로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전날 저녁 여행 가방을 싸고, 남아 있을 아이들의 반찬도 대충 챙기고, 이국의 음식에 대비해서 가져 갈 김치며 김 등을 싸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설래 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빨리 중국이라는 나라가 보고 싶어서 안달하는 내게는 출국수속이 지루하기만 했다. TV에서 보기로는 비행기 티켓을 들고 들어가는 것만 보아온 터라  그게 다 인줄 알았는데, 손가방이며 옷이며 검생하고 바지에 붙은 지퍼 고리에 붙은 금속때문에 삐삐거리는 신호음과 검색직원의 날카로운 반응, 순간의 무안함, 그리고 긴 기다림. 참! 비행기 한번 타기가 어렵기만 했다.

  중국비행기인데도 탑승객은 아마도 거의 전부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서양인 두세명을 빼고는 모두가 중국을 관광하려고 떠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한명의 한국인 여승무원이 탑승해서 한국말로 주의사항이며 안내를 해주어서 반갑기도 하고 안심도 되었다. 말이 통한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평안하게 하는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기내식이 제공되었는데,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원'은 쇠고기, '투'는 해물요리라는 안내와 함께 손가락으로 원, 투를 표시하란다. 여기서부터 손짓발짓이 시작되었다. 조그만 팩에 나온 밥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서 손짓 발짓으로 또 하나를 얻어먹는 촌스러움의 극치를 발휘했다. 여행사 사장님 왈 "엄여사 용감하네!" 하신다. 기내식으로 나온 조그만 김치 팩에 쓰인 글씨를 보자니 순천김치였다. "오매! 반가운거" 맛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자부심이 가슴에 팍 꽂힌다.

  지루한 비행이 끝나고 북경공항에 내렸다. 수화물을 찾는 홀에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 그림이 안보였다. 화장실 그림은 국경을 초월해 거기서 고만고만한 표시일 것인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뒷간을 중국말로 뭐라고 할까? 내가 머리를 굴려보았자 알 길이 없고, '톨리트'라는 발음이 정확한지도 몰라서 메모지에 W.C라고 써서 책상앞에 앉아있는 여직원에게 내밀었다. 왼쪽으로 가라고 손짓을 해준다. 필담의 시작이었다.

  잘생긴 남자 가이드가 마중을 나와서 반갑게 맞아준다. 어법이 좀 틀리기는 해도 한국말을 막힘이 없이 한다. 재중교포 3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차믕로 고맙고 대견스럽다. 우리마을 이국에서도 의사나 감정을 막힘없이 구사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쓴다는 것은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기에 가슴이 뭉클하게 고맙다.

  첫 관광코스인 '이화원'으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북경시내의 외곽을 돌아 이화원으로 가는 동안 첫 대면한 북경은 우중충한 도시로 나와 만낫다. 소나무 잎의 히멀건 색감하며, 지붕에 쌓인 먼지, 잘 정돈된 하천을 흐르는 시커멓고 더러운 물,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답답한 차창 밖  풍경. 어디서도 아름다움과 이국적 정취에 감탄할 만한 꺼리를 찾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화북지방 특히 북경에는 강수량이 극히 적고, 산이 없는 평야지대여서 온 도시가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적당히 비가 내려서 온 산천을 깨끗이 씻어주 아름다움을 원색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우리나라의 기후에 새삼 고마움을 깨닫게 된다. 잘 닦여진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이 모두 유명 브랜드의 외제차 이다. 순천에서는 하루에 한두대 볼까말까한 때깔나는 차들이 즐비하게 도로위에 널려있다. 중국에서 새나가는 부를 보는듯 하다. 고 정주영 회장님의 선견지명이 고맙게 생각된다. 내나라 차를 만들고 도로를 건설한게 우리의 지금이 있게 한것 같아 요즘 떠오른 재벌문제나 부의 분배 문제를 떠나서 고마운 생각과 자부심으로 어깨를 똑바로 세워본다.

  청말의 집권자인 '서태후'가 군함을 살 돈을 털어다 개보축한 이화원에서 무엇인가 보고 오려니, 어떤 감회가 일까? 가기 전까지는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였다. 막상 차에서 내려 들어선 곳에서는 좀 규모가 튼 궁궐과 인;공호슬를 보았을 뿐 청일전쟁의 실질적 패배원인으로 그녀의 탕진에 덤으로 우리까지 도탄에 빠져버린 역사의 비극을 찾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전한 마음으로 그냥 훝고 지나는 여는 관광객이 되어 앞선 사람의 뒷 꽁무니를 따라 걷고 사진찍고 하는 걸로 훌륭히 관광객 행세를 해냈다. 이국적인 풍광과 건물의 특이함-으례 우리의 고건축물에는 있는 용마루가 없는-을 빼고는 그 거대한 나라와 맞바꿀 그 어느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초라하게 보였다. 청 제국의 흥망과 맞바꾼 별장이라면 화려함의 극치 쯤은 이루고 있었어야 했고, 그 무엇인가가 있었어야 했다. 나의 어거지이지만 참으로 허탈했다. 서태후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워 허탈했고, 뭔가 특별할 거라는 기대가 무너져서 허탈했다.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여행사 조사장님이 들려준 서태후의 일대기가 더 선명하다. 그냥 책속에서 얘기 속에서 줏어들은 환상속 상상속 '이화원'으로 남겨둠이 좋았을 것 같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작은애가 북경에 가거든 꼭 먹어보고 와서 맛을 전해달라던 북경오리요리를 저녁으로 먹었다. 스므 살이 못 되 보이는 앳된 소저들이 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간단한 인사말을 우리말로 하는 게 어진간히 이곳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녀 갔나보다. 중국식 진수성찬 인 듯 돌림판에 갖가지 음식들이 담긴 접시들이 포개질 정도로 많은 음식들이 나왔다. 오리고기를 갈색 소스에 찍어서 채 썬 파와 같이 밀전병에 싸서 먹는 것이 북경오리를 먹는 법이란다. 그런데 소스에 섞인 향신료 냄새로 먹기가 매우 거북했다. 기름에 볶아낸 청경채, 버섯, 이름모를 채소들로 만든 모든 요리들이 독특한 향신료의 맛과 냄새로 심히 비위가 상해서 가져간 김치나 된장, 고추가 없었다면 저녁을 쫄쫄 굶을 뻔 했다. 오리고기만을 먹으니 쫄깃거리고 번들거리는 눈맛과는 달리 기름기가 쏙 빠진게 맛있었다. 중국의 손님 맞이 예법이 음식을 못다먹을 정도로 푸짐하게 또 내오고 또 내 온다더니 정말 음식 쓰레기가 걱정 될 정도로 많은 음식들이 나왔고 우리는 먹지를 못했다. 아마도 식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조만간 중국도 음식물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게 되는 날이 머지 않아보였다.

   천안문광장을 가로지르는 모택동이 건설한 거라는 대로를 통해 북경시내의 야경을 구경하며 서커스 관람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내가 서울의 야경을 구경하지 않았으니 뭐라고 비교 할 거리가 못되지만, 건물마다 불을 켜서 장식하는 것이 나라를 떠나 모두가 생각해 봐야할 전기낭비 인 듯싶어서 마음이 언짢다. 우리네 도시의 야경이 유흥가를 알리기위한 네온사인의 현란함이라면, 중국 북경의 야경은 건물들을 장식하기 위한 조명등의 불빛이었다. 약 40여분을 차로 이동하는데 곳곳에 은행간판들이 불을 밝히고 있느게 눈에 띈다. 그곳이 은행가인지는 몰라도 북경에 은행이 이곳 저곳 지나는 거리마다 많이 있는게 중국만의 특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서커스, 잡기세계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친정엄마가 생각난다. 유난히 구경을 좋아하는 엄마, 이 서커스 공연을 같이 본다면 아주 좋아하실 건데, 나만 이런 좋은 공연을 구경하는 것이 몹시 미안스럽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과 박수를 맘껏 치고 즐겼다. 자전거타기, 줄타기, 접시 돌리며 균형 잡기, 유리컵을 들고 균형 잡기 등등 TV로 보는 서커스 공연과는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