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아침 식탁에서 옛일을 회상하다.

소띠여사 2007. 2. 5. 11:07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에 간

반쯤 떠진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

 

식탁에 널려진

빈 맥주 깡통과

빈 반찬 그릇 - 멸치가 가득 담겨있었던-

호박죽이 가장자리에 들러 붙은 그릇.

 

방학이라고

두아들이 낮과 밤을 바꿔 살더니

멸치를 안주 삼고 맥주잔을 들이켰나보다.

저녁으로 끓여 준 호박죽을 맛없다고 타박하더니

출출함을 달래려고 그래도 이쁜 그릇에 담아 퍼 먹었나보다.

 

우리 부부 만 아침식탁에 앉았다.

맥주도 먹고 멸치는 아예 꼬랑지도 남기지 않고 호박죽에 김치도 반을 먹어치웠어.

쫑알쫑알 남편에게 일러 바쳤다.

 

내가 꽁지발걸음으로

울아부지 담배 돌라다 주던때가

병섭이 나이 때 만큼이었던가?

회상해 본다.

 

늘 종명이와 후조는 늦은 밤까지 눌러앉아 놀면서

떨어진 담배를 고파했었지.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는 아버지의 담배를

꽁지발걸음으로 두개피씩을 두어번 훔쳐와야

하룻밤이 갔었었지.

오늘 아침 생각해 보니

그때 울아부지가 담배 없어진 것을

모르셨을리 없으셨다는 생각이 퍼득 들었다.

 

처음엔 얼마나 황당했을까.

딸내미가 몰래 담배를 필거란 생각도 하셨을 테고...

담배를 충분히 가져오지 않은

머리에 피도 안마른 딸내미 머스매 친구들에게도

실망이셨을테고....

내 아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고백을 했을 때처럼

충격이셨겠지.

그래도 한번도 아버지께선

내게 담배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빈 맥주통을 보고

철없었던 나와 남편의 젊은 날과

아버지를 회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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