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는 늘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하다.
아이스박스에 하나가득 감생이를 담아오겠다는 펄떡거리는 푸른꿈을 품고서 나서지만
돌아오는 길엔 피곤한 몸과 후회를 안고 온다.
일요일 새벽 2시반부터 집을 나섰다.
토요일 저녁은 낚시점에 들러 미끼 및 낚시 도구들을 사고 집에와서 챙기고하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어 두세시간 눈을 붙인터라 비몽사몽간에 알람소리에 잠을 깨서 길을 나섰다.
눈감고도 찾아갈 줄 알았던 백야도는 길을 잘못든 탓에 어느 동네에 들어가서 뺑뺑이를 돌다
겨우 낚시배 출항 시간(새벽4시)에 맞춰서 도착했다.
그래도 좋았다.
오늘은 꼭 펄떡거리는 감생이와 밀고 당기는 손맛을 짜릿하게 느껴 볼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었기에.
남편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낚시대를 펼쳐들고 고기들을 유인한다.
밤눈이 어두운 나는 먼동이 트길 기다려야만하고,
어둠은 더디게 더디게 물러가고,
캐미를 단 찌는 물속으로 잠수하지 않는다.
바다의 새벽은 참 춥기도 하다.
추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남편이 나에게 낚시대를 펴고 해 보란다.
물이 바뀌는 타이밍이었나 보다.
내 찌가 물속으로 쏙 들어간다.
얼른 낚아 챘다.
일본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빨간우럭을 낚았다.
기분 아싸다~~~
한시간이 넘게 헛탕치고 있던 남편이 부러워하는 눈치다.
저쪽편 조사님 낚시에 펄떡이는 놈이 건져 올려진다.
허연것이 감성돔이 아닐까 부러워하는데 정작 그들은 별 환호가 없다.
남편의 찌도 물속으로 잠수를 했다.
어떤 놈이 걸려 온단다.
틀림없이 감성돔이란다.
"뜰채 펼까?"
"아니 그정도는 아니야~~~"
진짜 감생이가 올라왔다.
저쪽편에 있는 관중만 안본다면 둘이 입맞춤을 하며 줄줄이 걸려 올라올 감생이 환영식을 할 텐데...
환영식이 미흡했던지 그 후로 기나긴 시간 동안 감생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크릴 미끼로도 갯지렁이로도 감성돔을 홀리지 못했다.
나는 지금 낚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심한 피로로 몸살을 앓아 온 입술이 퉁퉁 부르터 있다.
보길도 선창리 방파제에서 큰아들놈이 낚아 올린 장어
퇴비를 배달한다는 전화가 왔다.
친정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터라 내게로 온 전화다.
배달처를 무리하게 변경하려는 친정어머니때문에 심통이 나있는데
그 업무를 담당하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일반전화와 핸폰으로 이리저리 전화질을 하던 터라 좀있다 전화하마고 끊었다.
다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게 진짜 무슨일이 있긴 있구나하고 최종 확인차 전화를 했나보다.
뭔돈이 그렇게 급히 필요하냐고 한다.
무슨돈?
난 돈때문에 열받은게 아니라 빌어먹을 퇴비 배달처때문에 열받은 것인디~~~
친구 왈
문자가 왔드란다.
내가 마음이 심란한 일에 휘말려서 급히 300만원이 필요하니 송금해 달라고
연거푸 두번에 걸쳐 문자가 배달되니 정말 급한일이 있나보다고 생각했나보다.
거기다 확인 전화를 했는데 내가 좀있다 전화한다고 끊었으니 딱 아구가 맞아 떨어졌겠다.
송금하기 전에 다시 확인 전화를 해서 다행이 낚시에 당하지 않았다.
내가 네이트 주소록에 저장해 놓은 사람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정말 피해 없기를 바라면서~~~
적은 돈도 아니고 300만원을 급히 송금해 달라는
그것도 내 계좌도 아닌 다른사람이름으로 송금해 달라는 문자를 받고서는
친한 친구야 내가 정말 급하니까 연락했겠지하고 감싸 안아라도 줄것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이여자 뭐하자는거야'라고 불쾌해 하기도 했겠지
어디 어느곳을 해킹해서 날 미끼로 선택했을까?
내가 꼭 크릴이나 갯지렁이가 된 기분이다.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들~~~
내가 낚시바늘에 꽂았던 크릴이나 갯지렁이도 나처럼 매우 기분이 좋지는 않았겠구나.
내 낚시바늘에 꽂은 크릴을 따먹고 요행히 빠져나간 바닷속 물고기들도 우리처럼 가슴을 쓸어 내렸을까?
친구가 문자를 삭제해버려 경찰에 신고는 못하고
송금하려고 메모해둔 계좌번호를 외환은행에 문의를 했다.
정말 '620-206432-109 이영진'이라는 정상계좌가 계설되어 있느냐고.
이미 다른사람들이 신고를 해서 피싱 주의계좌로 등록되어 있다고 했다.
나와 내친구들을 낚으려다 실패한 도사(盜師)님들 부디 낚시대 꺼정 압수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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