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의 여행

부러진 화살을 보고

소띠여사 2012. 1. 25. 11:00

실재의 김명호 교수든

가상의 김경호 교수든

그가 석궁을 들고 판사에게 간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그러나 그가 석궁을 들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분노에 난 동감한다.

대학입시 시험은 교수나 대학이나 재단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가?

이런 것은 차치하더라도 진실과 정의가 올곧게 서 있어야 할 대학에서

출제교수와 대학, 재단의 그깟 체면을 위해 오류를 지적하는 올바른 행위를 매도하는 것은 폭력이다.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달구는 학교폭력, 집단 폭력과 무엇이 다른가?

이런 폭력에 사법부가 법으로 심판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 힘없고 빽없고 돈없어서 법만 믿고 사는 우리 힘없는 시민들은 이나라에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석궁사건의 모태는 이 어처구니 없는 법의 잣대이다.

가장 최후에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법의 보호막에서 내팽개쳐 졌을때 느꼈을 그 분노, 

석궁을 들고 판사를 찾아가서 직접 쏘았던 쏘지 않았던 분명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잘못은 잘못이지만

그 분노를 표출하므로써 이기적인 사법부의 초라한 면면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줬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간사한 말을 우린 드라마나 신문이나 TV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이 사건에서 이'무죄추정의 원칙'은 아예 없었는 듯.

속옷과 조끼에는 피가 묻었는데 와이셔츠에는 묻어 있지 않은 동일한 남자의 피,

피해자가 직접 진술했다는 부러진 화살,

그 화살을 분명 받았다는 경비원의 진술,

그러나 없어진 화살촉 끝이 뭉툭한 부러진 화살,

석궁은 완전장착을 해서 근거리에서 쏘면 관통을 할 수 있는 흉기라는 사실.

 

진교수가 우려한 픽션을 논픽션으로 이해한 나는 이영화를 보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

석궁사건은 판사가 석궁을 맞았든 안맞았든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법부를 향한 테러가 중요사항이었다.

사법부테러로 재판을 하려면 왜 사법부 테러를 했는가가 끄집어 내 질것이고

그러다 보면 수학시험 오류가 나오고, 잘못된 재판이 나오고~~~

그냥 석궁 맞았다고 재판해야 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수학시험의 오류는 재판의 오류와 도치되나?

기득권층의 체면으로.

 

우리 소시민들은 언제까지 기득권층의 체면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살아 내야 하나?

온가족이 이영화를 보고 술잔을 기울이며 토론했지만

남는건 상처받은 가슴뿐이다.

그나마 교수님은 판사에게 석궁을 쏘고도 4년형을 받는데

빽없고 돈없는 놈은 판사에게 욕했다고 10년형을 받는 영화속의 그 재소자가 나이기 때문에

섣불리 분노를 표출 할 수도 없는 아주 작은 시민이기에 생채기만 더 생겼다.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것은 그들이나 나나 똑같이 나눠가진 것.

한 표!

이걸 어떻게 행사해야 하느냐는 숙제를 열심히 풀겠다.

영화속 김경호 교수처럼

초등시절 어려운 수학문제를 먼저 풀었다고 자랑스럽게 손들지 않는 것처럼

나 혼자만 풀 것이 아니라 이웃들과 같이 풀고자 노력할 것이다.

황제팽귄이 영하 6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을 허들링으로 이겨낸단다.

소시민들도 연대로 혹독한 그들의 그들만의 그들을 위한 세상을 이겨내자.

시민들의 시민들을 위한 세상이 분명 어디메쯤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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