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말, 다문화.
대부분 결혼 이주자를 위해 쏟아지는 다문화 정책들.
물건너 온 그녀들을 위한 사회의 관심과 배려는 날로 높아만 가는데,
국제결혼을 하고서 파경을 경험하는 대다수의 우리나라 남자분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서고 들어보지 못했다.
가해자로 낙인 찍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할 딱한 처지에 놓여있는게 현실이다.
지인이 약 6여년 전에 베트남 아가씨와 국제결혼을 했었다.
전문 중매쟁이의 권유로 수월찮은 중매비를 지불하고
사십대 중반 총각이 스물두 살 어린신부와 결혼을 했다.
생계 수단인 트럭도 바꾸고 얼마 안돼는 토지도 팔아서 결혼비용을 조달했었다.
경제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어렵게 결혼을 하다보니,
성격이 모질지를 못하고 좀 어수룩한 면도 있어서 어린신부가 마냥 좋았나 보다.
신발이며 옷이며 이것저것들을 채복으로 사달라고 조르면 사주기도 하고,
매월 친정에 용돈도 부쳐주고,
친정에서 필요할 것같은 물건들을 사서 소포로 부쳐도 주고,
친정식구와 전화통화를 한다기에 하나보다 했더니 100만원이 넘는 전화비가 청구되는 사태도 있었다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전화카드를 사서 주고는 그 금액만큼만 전화를 하라고 시켰더니 불만이었단다.
인터넷을 해야 한대서 컴퓨터 사고, 인터넷 회선 연결해 줬더니 새벽까지 체팅하다 맨날 늦게 일어나니
시어머니께서 좋아 하실리 만무하지 않는가.
분가하자고 졸라서 셋방 얻어 분가도 했고,
알바해서 친정집에 돈부쳐 준다기에 그래라 하고 아는 마트집에 취직시켜 줬더니
급여가 작다고 식당에 취직해서는 맨날 늦은 저녁에 퇴근해서 컴퓨터 끼고 있다가
아침에 일나가는 남편 아침밥도 나몰라라, 빨래도 나몰라라, 심지어 그녀 속옷 빨래까지 남편이 해줬단다.
그녀도 한국에 결혼이민만 오면 새세상이 열릴듯 싶었겠지만
내 지인도 결혼에 대한 환상이 어찌 없었겠는가?
늘 와서 하소연하면 딸같은 나이어린 신부이니 아이처럼 다독여서 잘 살라고 조언하곤 했었다.
순하고 여린 성격이라 우리들이 요즘 우리나라 어린 딸들은 이러이러한다고 달래면
그래도 어린신부가 더 철이 들었다고 마음을 풀곤했었다.
결혼 1년 정도 지났는데 친정에 가고 싶다고 어찌나 졸라대 짠하기도 하고 결혼생활을 원만히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에서 빚까지 얻어 처갓집에 다녀도 오는 성의도 보였었다.
처음에는 친정에 돈부쳐 준다고 식당일 나갔는데 저 혼자 쓰기에도 모자란다면서
생활비는 생활비대로 친정에 부칠 돈은 돈대로 남편에게 요구했었다고.
날마다 생활에서 아내로서 너무 무성의하게 하다보니 다투게 되었나보다.
가출을 해버렸다.
백방으로 찾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하고 애간장을 녹이다가 한달여가 지나서 겨우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 온 날,
남편은 집에 정말 들어와 살겠거니 생각하고 부부로서 당연히 잠자리를 같이 했었다고.
그 다음날 마침 일요일이어서 일을 안나가고 집에 있었더니
오전 10시경에 일어나서 한다는 말이 당장 친정집에 50만원을 부쳐 줘야 하니 그 돈을 달라고 하더란다.
하룻밤 화대가 그렇게 비쌀수 있나?
너무 화가나서 한 대 때려 버리는 실수를 했다고.
오후쯤에 친구가 와서 목욕을 간다고 목욕 바구니를 들고 나가더니 다시는 집에 돌아 오지 않았다.
결혼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처음 베트남에서 올때 무슨 약을 한 꾸러미 가져 왔드란다.
뭔 약이냐고 했더니 같이 온 언니에게 전해 줄 약이라고 둘러댔다고.
몇달이 지나도 아는 언니에게 전해 줄 기미가 안보여서
몰래 하나를 들고 나가서 약국에서 무슨약인가 물었드니 피임약이라고 했단다.
지나고 생각하니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들어 오지 않았나 싶다.
사십 중반을 넘겼어도 피임약 구경조차 하지 못한 순진한 한국 노총각,
스물두살 어린애가 챙겨가지고 온 피임약.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할 수 없고 괘씸하기 이를데 없다.
백방으로 연락도 해보고 친구들에게 을러도 보았지만 모두 허사였고 영영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출 신고하고 6개월 뒤 서류상 이혼이 되었다.
작년부턴가 가끔 전화연락을 한다고 한다.
어머님 안부 물으면서 주민등록증 만들어 줄 수 없냐며 떠본다고.
그러다 올해는 말소된 여권 만들어 줄 수 있느냐, 베트남 대사관에 같이 가자고 하며
이곳에 한 번 오겠다고 했단다.
어제말로 오늘 다니러 온다면서 남편이랑 살겠다는 말도 없고, 베트남으로 돌아가고픈 맘도 없다고 해서
화가 나 몇개월 후에 결혼 할 거라고 해버렸다고.
그랬더니 오늘 베트남 대사관 안 가도 좋으니 말소된 여권과 지네 나라 신분증 보내주고 잘 살아라는 문자를 보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그녀에게서 연락이 올때마다
실낱같은 희망의 끄나풀을 잡고 싶어서 그가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또 상처를 입는지 안다.
많은 날들을 그 상처를 달래느라 안간힘을 쓰다가 다시 평정심을 찾을만하면 다시 전화질을 해대는 그녀가
정말 찾기만 한다면 내가 나서서 뺨이라도 한 대 후려쳐주고 싶을 정도로 밉다.
너무 화가 나서 오늘은 그녀의 문자에 내가 답장을 써 줬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떻게 보상할런지 생각해보고 답을 주면 말소된 여권을 보내 줄지 말지 생각해 보겠노라고.
다문화 시대를 외치며 그녀들 중 한 명은 우리나라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했다.
그녀들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는 우리나라 노총각들에 대한 위로나 대책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들도 진정 이시대의 약자이다.
두 쪽 다 약자인데 지금 이 사회나 정치권은 오롯이 그녀들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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