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소쇄원에서 기다리다.

소띠여사 2014. 7. 28. 22:21

소쇄원에서

4,50분 후에 만나게 될 남편을,

출근 후 약간의 미안함을 떨쳐내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업무에 복귀해 있을 나를,

여름 끝자락에 예약해 둔 가족 여행 휴가를,

늘 별일 없어 무료해 죽을 것 같다고 푸념하는 매일이 휴가일 그날들을

기다리다.

 

 

월요일인데 주차장이 꽉 찼다.

순간 뭔일인가 싶었는데 요즘이 휴가철이라는 걸 못 알아차렸다.

늘 바빠도 바쁘고, 별일이 없어도 바쁜 난

짬을 내어 한가한 시간을 즐기러 온 탐방객들의 여유가 마냥 부럽기만하다.

 

 

연수 받으러 간 남편이 배가 몹시 아프단다.

허겁지겁 약을 사들고 달려 갔다.

옆 사람들 눈치도 보여서 약만 전해 주고 다시 내려오는데 전화가 왔다.

너무 아파서 병원엘 가봐야 할 것 같단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러 밤을 밝혀도 왜 아픈지 속시원히 말을 안해준다.

간 부위에 물이 찼다고 겁을 줄 뿐

 

 

아프다는 남편과 함께 동동거리며

그렇게 깜깜 밤길에 소쇄원을 지나치고,

먼동이 트기 전 어스므레한 길에 소쇄원 입구만 스쳐 지났다. 

 

 

주말을 지나

남편을 대신해 병원에 들러 장염일거라는,

아마도 장염때문에 물고임이 보였을 거라는,

정 걱정되면 연수 끝나고 다시 한 번 검사 받아 보라는,

그런데 아프면 곧장 오라는,

한 숨만 나오는 

구두 진단서를 받고,

 

 

새벽 아침길을 제촉하다가

허둥대며 못가져간 허리띠를 사기 위해

어디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을 광주 시내를 내비녀 따라 헤맸다.

 

 

출근해야 하는데,

출근해서 늦은 이유를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머릿속은 엉키고,

가슴은 순천 어디께쯤으로 뛰어가는데

남편을 만날 수 있는 점심시간은 아직 남았다.

 

 

에라 모르겠다.

여기꺼정 왔는데 소쇄원이나 들러 보자.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도

마음은 바쁘다고 볶닥인다.

 

 

허리띠를 사기 위해 10시 반에야 문을 연다는 마트 앞에서

천원씩이나 주고 폰 베터리 충전을 했건만

내비녀가 달랑달랑 빼먹어 버렸다.

 

 

빨간 불이 들어 온 베터리의 조급함에

또 마음이 바빠지고,

누군가에게 쫒기듯 헨드폰을 돌리며 서둘러 찍어 댔다.

세상의 모든 소소한 바쁨은 모두 내 것인가 보다.

 

 

스승을 잃은 양산보 선생은

이곳에 이 아름다운 정자를 지으며

아마도

바쁘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렸을게다.

 

 

그 격동의 시절

새로운 세상으로의 꿈이

오늘 나의 이 볶닥임 보다는 천배는 바빴으리라.

 

 

그럼에도 선생께서는

자연 그대로를 정원으로 품으며

당신 앞에 놓인 세상의 바쁨을 품어 가라 앉히셨겠지.

 

 

무엇엔가 가두려 하는 것이 바쁨의 근원일것 같다.

시간 속에 꿰 맞추려하고

가만 두어도 흐르면 만날걸 끌어다 붙이려하고

날 비껴가는 걸 꼭 쫒아가 마주보려하니

바쁘고 바쁘겠지.

 

 

 

자연을 정자 속에 가두지 않고

자연 속에 정자 또한 가두지 않으시는 걸로

바쁨을 다스린듯 느껴진다.

 

 

 

바쁨을 다스리러 온 문객들과 더불어

평정심을 세우고선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무언가 기다리셨을까?

 

 

끝내 난 보글거리는 맘을 다스리지 못하고

기다림을 거슬러 오르려고

푸르름이 소리쳐 더 조용하고 평온한 정원을 뛰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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