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의 여행

위문편지

소띠여사 2015. 4. 2. 11:29

 

조카가 군입대를 했다.

올케가 조카에게 편지를 좀 써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 마음 쓰임을 잘 알기에 기꺼이 그러마고 약속을 했지만 잘 실천하지 못했다.

요즘은 입영 훈련을 받을 때

인터넷 카페에서 가족 친지들이 훈련병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서

비교적 손쉽게 위문편지를 쓸 수 있음에도

바쁘다는 핑계와 약간의 서먹함 등으로 띄엄띄엄 편지를 썼다.

아마도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 인터넷 편지 창구가 막히면 손편지를 써써 위문하지는 못할 것 같다.

고모된 도리로 한 번 정도는 손편지를 써야 할 것인데 이런저런 핑계를 찾으며 실천하지 않을 것 같다.

 

조카에게 위문편지가 선뜻 써지지 않은 것은 서로가 공유했던 시간이며 관심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 4~5학년부터 연말쯤엔 '국군장병아저씨께'라는 첫머리로 시작해서 강제 위문편지를 써야했다.

일면식도 없는 미지의 '국군장병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써야하는지, 어떤 위문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참으로 어려운 숙제를 밤늦도록 끙끙대며 해냈던 기억이 새록하다.

미지의 아저씨와 난 교감하는 그 무엇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편지글 쓰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국방의 고마움도, 국방의 고단함도 모두 나에겐 선생님의 짧은 설명으로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위문편지 쓰기는 선생님께 간신히 오케이를 받는 선에서 연례행사의 버거움을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내가 가슴이 아닌 머리를 쥐어짜서 편지를 썼기때문인지,

단 한 번도 '국군장병아저씨'로부터 답신을 받아 보지 못했다.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인데 나의 성의 없는 편지는 선생님 손에서 걸러져서 아예 폐지 신세가 되지 않았을까?

그시절은 우편료도 부담되던 시절이었으니 글씨체도 예쁘고 내용도 좋은 편지들만 골라서 보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본격적인 위문편지 쓰기의 전성기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고 1때인가, 언니의 남자 친구가 군입대를 했다.

처음엔 언니의 명령으로 쓰기 시작했다가 차츰 재미가 붙어서 마구 써대기 시작했다.

내 편지를 언니 편지보다 더 기다린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1주일에 한 통 정도씩 썼던것 같다.

아마 기억에 의한 것이니 2~3주에 한 통 정도 씩 일 수도 있을 것이나 그래도 참 많이 썼었다.

무엇을 재잘 댔는지 기억할 수 없으나

그때그때 내 눈에 보이는 것들, 친구들과의 일상, 내가 기뻐하는 일들, 슬퍼하는 일들....

편지에 써야 할 것들은 넘쳐났던 것 같다.

위문편지를 쓰는게 버겁거나 짜증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었으니까.

소녀시절 재잘 댈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그 오빠에게 하도 편지를 써 대니 친구가 자기 오빠에게도 위문편지를 쓰라고 강요를 했다.

친구 오빠라고는 해도 그때까진 일면식도 없었던터라 정말 '국군장병아저씨'에게 쓰는 위문편지였었다.

당연히 쓰는 것이 부담이 되는 고역이었으니 내용 또한 그렇고 그랬겠지만,

친구 오빠는 내 편지에 반듯반듯한 글씨로 동생에게 하듯 당부의 말들과 군생활의 일상들을 적어 따박따박 답장을 해주셨다.

그리곤 내 편지가 기다려 진다는 멘트는 꼭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여자친구가 없는 오빠라서 막내 여동생의 친구인 나의 편지라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다그침에 시작한 편지가 핑퐁대며 차츰 횟수를 더하다 보니

사진으로만 본 친구 오빠를 정말 오랜시간 알고 지낸 친한 이웃 오빠처럼 편해지고,

오빠가 제대할 때까지 열렬하게 위문편지를 써댔다.

친구 아버님께서 날 며느리 삼겠다고 하신게 그 위문편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 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

두 오빠들에게 위문편지를 쓰면서 설레던 기억들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많은 편지를 썼었다.

 

졸업 후 촌구석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힘겨워 하던 시절에 난데 없이 군인아저씨로부터 편지가 날아 왔다.

학창시절 좋아 하노라며 졸졸 따라다녔던 선생님께서 때늦게 군입대를 하셔서는 무료나 달래려고 나에게 편지를 쓰셨던가 보다.

다시 위문편지 쓰기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무료와 나의 무료가 만나서 서로를 위문했다.

열심히, 정말 열심히 즐거워할 소재들을 찾고

내가 쓸 수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매주 편지를 썼었다.

선생님의 군생활이 다 끝날 때 쯤에 왠일인지 답신이 없었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내가 18세 소녀로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 선생님이 제대일이 다가오자 내가 부담이 되었었나 보다.

군인이었을 때는 위문이 필요했겠지만 사회로 복귀하고서는 나의 위문이 버거웠던 것 같다.

나도 피차 일반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몰랐나 보다.

우린 절대로 연인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난 깍듯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었는데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알아채는 기지가 없었나 보다.

좋은 추억으로 자리메김할 수 있었을,

서로를 위문해 주었던 '위문편지' 놀이가 무참하게도 추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그는 날 떼어내는 방법으로 아주 치졸한 짓을 해서 학창시절 선생님을 좋아했던 내 순수한 마음마저 지우고픈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답신이 없어 궁금해 하던 차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자신은 그 선생님의 후임병이며

선생님께서 나랑 편지를 주고 받으면 심심하지 않게 군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당부가 있어서 편지를 했고

자신과 편지를 주고 받자는 제안을 한 글이었다.

그땐 2년이 넘게 군생활을 할 때였으므로 2년여를 열심히 편지글을 써 준 제자에게 선생님은 가장 나쁜 방법으로 이별을 고했다.

나의 위문편지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대목이다.

 

한 동안 끊었던 위문편지는 남편의 입대로 다시 시작되었다.

난 누구에게보다도 더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댔고, 답신은 늘 목마르게 배달 되었었다.

제대하고 온 남편은 내가 써 보냈던 편지를 한 통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통신보안 때문에 읽고 바로 소각해야 했단다.

이 이유를 믿어야 할지 아직도 고민중이다.

보관하고 있는 편지는 남편이 내게 부친 편지 뿐이다.

역사의 반쪽만 남아 있는 셈이랄까, 하여튼 그 편지의 서너배쯤은 내가 더 많이 썼을 것이다.

시간내어서 한 번 세어보고 다시 읽어 보아야겠다.

 

몇몇 친구들이 입대했을때도 위문편지를 썼었다.

친구이기도 하며 집안내 동생뻘 되는 친구가 입대 했을 때도 몇 번 편지를 썼었다.

연말이 되어서 위문품을 보냈는데

자질구레한 것들을 넣고, 사재 팬티가 군 위문품으로는 젤이라는 말을 들어서 흰색 삼각팬티를 한 장 넣었다.

훗날 전해 들은 이야기.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당하고 상처가 아물지 않은 엉덩이를 하고선 휴가를 왔는데,

아짐께서 아들의 상처를 보고 많이 가슴아팠는데 깨끗한 팬티를 입고 와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었노라고 하셨던

맘 아프며 짠하지만 뿌듯했던 좋은 기억.

 

주유소에 근무하면서 알바하던 아이들이 몇 명 입대를 해서

그 애들에게 의무감으로 몇 통의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냈었다.

한 아이는 제법 많은 소식을 서로 주고 받았을 정도로 위문편지로 인해 가까워진 사이가 되었다.

 

내 아들들이 입대를 할 쯤에는 인터넷 편지쓰기가 있어서 훈련병 때는 훈련병 기간 동안 주 6일을 출근하듯이 날마다 빠짐없이 편지를 썼다.

손은 자판기를 두드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아들을 군에 보내보지 못한 여자들은 절대 공감할 수 없는 풍경을 연출했었다.

손편지는 위문품을 보낼 때 쓰는 정도로  몇 통 밖에는 쓰지 않은 것 같다.

전화로 소식을 주고 받으며, 심심치 않게 휴가를 오고 면회를 가다 보니 그 핑계로 손편지 글을 쓰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들이 엄마의 정성어린 손편지를 많이 기다렸을 법도 하거니와 엄마의 의무이기도 하건만

바쁘다는 핑계거리를 앞세워서 손편지의 정성을 아들들에게 보내지 못했었다.

깊이 반성한다.

 

앞으로도 남은 조카들이 입대를 하면 몇 통의 위문편지를 쓰게 될 것이다.

기꺼이 위문편지를 수월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미리미리 조카들과 공감하는 그 무엇을 만들어 놓는 것일게다.

친정 조카들 뿐만이 아니라 시누이 조카들과도 유대를 돈독히 해 놔야겠지?

어디~~~ 몇 명에게 위문편지를 써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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