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의 여행

도가니를 읽고

소띠여사 2009. 7. 18. 09:15

  DAUM에서 연재할 때는 별로 읽고 싶지가 않았다. 쏟아지는 다른 정보들도 다 읽어 내지 못하는 내가 사이버 소설까지 읽어 낼 자신이 없어서였다. 또 신문연재소설을 읽을때의 조바심, 맥 끊어짐, 읽어내야 한다는 부담감.. 이런 등등의 시달림으로 다시 끼어들기가 싫었다.

 

  솔직히 도입부의 안개타령의 흐물거림이 싫었다. 그렇고 그런 연애소설이겠거니 했다. 공지영 작가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 신문의 반쪽을 점령해서 광고하는 걸보고 이게 벌써 종이책으로 발간 될 정도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고 또 그에 따른 파급이 있었나하는 호기심으로 읽었다.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편하다'이다. 참으로 불편하다. 이말 이외에는 내가 [도가니]에 대한 소감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불륜이나 상류층의 비뚤어진 삶을 비틀어서 틀어대는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작가를 심하게 씹어버린다.  비뚤어진 상식과 시답잖은 상상력으로 나를 괴롭히는 그 작가들이 싫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욕해대는 나는 더 한심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장드라마를 보면서는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다. 그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의 사람들이고, 그런 인간 막장의 사람들을 붙잡고 인생역전을 꿈꾸는 신데렐라족이 내 주위에는 없기때문이다.

 

  그런데 소설 [도가니]의 상황과 등장하는 사람들은 내 주위에 널려 있는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에 몹시 불편하다. 발가벗고 서서 남들에게 구경시킴을 당하고 있는 것-내가 어떻게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해서-처럼 부끄럽고 분노하고 그리고 절망하는 마음에 휩싸여 녹초가 되어버렸다.

 

  분명 [도가니]는 막장을 드러내 놓은 소설이다. 막장드라마 작가의 고갈된 상상력을 맘껏 욕하고 씹을 수 있는 그런  막장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며 살아내고 있는 이 시대의 막장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펼쳐 놓아 마음 놓고 작가의 상상력을 욕할 수 없어서 불편하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쓰여진 소설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진실과 사실을 그냥 옮겨 놓은 것이어서 불편하다. 그러한 것들에 잠깐 분노하면서 난 발을 빼고 달아나는 내 안의 내가 있는 현실이 불편하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분노하지 못했다. 

 

  이강석 이강복 형제가 개과천선하거나 없는 신이 나타나서 은총을 내리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 짓지 않은 작가에게 감사한다. 저질러 놓은 죄과를 반성할 기득권은 이땅에 없으며, 그 기득권을 벌하는 신을 난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렐루야로 찬양을 받는 신은 그들만의 신이다. 유리, 연두, 민수의 신은 같은 걸 격어내면서 그것을 뛰어 넘으려고 서로 연대하며 묶는 마음의 끈이다. 나의 신도 연대의 끈이다. 그런데 난 열렬히 나의 신을 믿고 찬양하고 따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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