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김재혁 옮김
나는 변화에 대한 무서움을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성격탓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전화하기, 카톡하기 등 아주 기본적인 것만을 습득하고 사용한다.
스마트 세상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지점에 걸치고 산다.
그러다 얼마전 스마트 세상에서 신세계를 발견했다.
TV에서 모 통신사 광고의 자사는 영화를 보는데 최적이라고 꼬드기는 것을 보고,
그럼 다른 통신사도 아마 그런 기능이 있겠지라는 생각에 내폰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혼자서, 정말 혼자서 찾아낸 신세계.
발견했다는 뿌듯함, 내맘대로의 자유로움.... 분명 신세계다.
신세계 입문 첫 작품으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선택했다.
가격이 비싼 요즘 개봉영화는 좀 부담스럽기도 하거니와 내용들이 폭력적이거나 민망하거나 너무 가벼운 것들이라서 몇년전 극장에서 봤고 원작도 읽어서 믿을 수 있는 작품이어서 골랐다.
그때 극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처럼 다시금 영화를 봤어도 내 능력으로는 미하엘의 내면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내친김에 책꽂이에서 책을 찾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책 속의 글들이 수면제가 되지 않는걸 경험을 하면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15세 고교 1학년 남학생 미하엘 베르크와 완숙한 36세 한나 스미츠의 사랑이야기이다.
어쩌면 그저 그렇고 그런 성장 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독일 전후세대와 전쟁세대의 갈등과 화해를 녹아낸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은 간염에 걸린 미하엘이 하교길에 토하고 이를 본 한나가 친절하게 씻겨주고 집까지 바래다 주는 우연에서 시작한다.
가을의 이 우연한 만남이 병세를 회복해 가던 초봄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찾아간 한나의 집에서 또 한 번의 우연에 의해서 깊어진다.
한나의 스타킹을 신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을 넘어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열정을 품게되는 사춘기 소년 미하엘이 다시 한나를 찾게 되고, 그리고 둘은 둘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미하엘은 30분여 동안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고, 둘이 샤워를 하고, 사랑행위를 하고, 잠깐 누워있기가 이 둘의 사랑의 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은밀한 사랑으로 인해 한나를 만나기 이전에는 자신감 없이 평범하던 미하엘은 자신감이 충만한 소년으로 거듭나게 되고, 한나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공부 또한 열심히 하여 발병으로 인한 학습 부진을 떨쳐내고 2학년으로 진급하게 된다.
여느 연인들처럼 싸움도 하지만 먼저 사과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한나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굴복하는 쪽은 미하엘이다.
부활절에 한나와 자전거여행을 하며 온전하게 며칠 밤낮을 둘만의 세계로 만들며 여느 연인들의 밀월여행 처럼 즐긴다.
둘은 겉으로는 엄마와 아들처럼 위장했지만 한나는 전적으로 미하엘에게 의존한다.
여행지를 결정하고 방을 잡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일체의 것들을 미하일이 하게된다.
이렇게 리드하며 남자로서 자부심까지 느끼게 되자 미하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확신을 한다.
한나를 기쁘게 할 요량으로 아침일찍 일어나 꽃과 아침을 준비하러 나가며 남긴 쪽지는 감쪽같이 없어져 버리고 불같이 화를 내는 한나는 허리띠를 풀어 미하일을 때린다.
미하엘은 그때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폭력과 마주한다.
이해 할 수 없는 한나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내키지는 않지만 또 사과하고 사랑을 확인 받고자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둘은 날마다 사랑의 의식 지속하면서도 수영장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넓혀간다.
미하엘은 자신의 생일날 친구들의 생일파티 초대도 거절하고 한나에게 왔지만 어딘지 차가운 한나에게서 따뜻하게 생일 축하도 받지 못하자 다투게 되고 미하엘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한나에게 가야 할지 계속 수영장에 남아 있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때 설핏 다리위에서 한나가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느낀다.
한나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 들일지 아닐지 잠시 망설이다가 한나를 놓치고 영영 둘은 이별하게 된다.
미하엘의 첫사랑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끝나 버린다.
미하엘은 자신이 한나를 배반 - 떳떳하게 자신의 세계로 끌어 들이지 못한 행위를 배반했다고 생각하는-했기때문에 둘의 사랑이 깨졌다고 생각한다.
이 자책은 미하엘이 끝내 떨쳐 내지 못하는 굴레가 된다.
미하엘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지도교수의 세미나 주제에 따라 참여하게 된 '죽음의 행진'이라 이름붙여진 전쟁 중의 유대인 학살 사건의 재판정에서 한나를 다시 보게 된다.
한나 스미츠는 지멘스라는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음에도 SS에 들어가서 수용소의 경비원이 된다.
경비원의 임무 중 한달에 한 번 10명의 인원을 착출해 아우슈비츠로 이송해야 했는데 소녀들, 그 중에서 약한 소녀들을 골라 한 달 내내 음식을 제공하고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며 밤마다 책을 읽게 했다.
전쟁의 끝 무렵 유대인들을 이송 중 한 마을의 교회에 가두고 폭격으로 불이 나자 교회 문을 열어 주지 않아서 교회 건물에 수용되었던 많은 사람 중 모녀 두 사람만 살아 남고 모두 죽었다.
이 사건은 살아남은 소녀가 책을 출간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때 살아 남거나 도망치지 않은 경비원 6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한나도 그 6명중 한 명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의 죄도 짊어지게 된다.
5명의 경비원들이 모두 한나가 책임자였으며, 그당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증언한다.
한나는 보고서는 모두 합의하여 썼다고 강변하자 배심원이 필체를 확인하자고 하자 한나의 변호인(국선으로 경험없는 젊은 변호인)은 20년이 지났으므로 필체 확인은 부당하다고 항변하는데, 한나는 맥없이 자신이 보고서를 썼으므로 필체를 비교 확인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버린다.
이때 미하엘은 그동안 몰랐었던 한나의 비밀을 알아차린다.
미하엘이 한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 책을 직접 읽지 않고 읽어 달라고 하던 것, 교과서들에 써 있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던 것, 자전거 여행 계획서를 짜자며 펼쳤던 소개책자를 거부하던 것, 여행지에서 음식을 주문하지 않던 것, 호텔에서의 그 아침 없어져버렸던 쪽지와 발작에 가까웠던 한나의 불안증, 기관사로 진급하여 교육 받기를 거부하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던 것-들은 한나의 수치심의 근원인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약점을 숨기기 위함때문이었다.
미하엘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한나를 찾아가 설득하거나 재판장을 찾아가 한나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
미하엘은 자신이 또 한나를 배반했다고 자책한다.
한나는 감형없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수감된다.
미하엘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그 딸이 다섯살이 되던해 이혼을 한다.
법조인의 길을 걷지 않고 연구원의 길을 걷는다.
미하엘은 한나의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며, 늘 여자들을 만나도 한나와 비교하게 되고, 만나는 여자들에게서 한나에게서 느꼈던 것들을 찾고자 한다.
만나는 여자들에게 스타킹을 신어 보라는 부탁을 하지만 그날 한나에게서 본 그런 모습을 보이는 여자는 단 한명도 만나지 못하다.
8년이 지난 어느날 한나에게 읽어 줬던 책 목록을 발견하게 되고, 다시 책을 읽고 녹음하여 한나에게 보낸다.
이렇게 녹음테잎을 보낸지 4년만에 한나로부터 편지를 받게된다.
한나가 글을 읽고 쓴는 걸 알면서도 계속 녹음 테잎을 보내면서도 사적인 글은 한 번도 보내지 않으며 면회 또한 한 번도 가보지 않은채 10년 세월이 흐른다.
어느날 교도소장으로부터 한나의 출소 연락을 받게 된다.
한나가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미하엘이 유일하므로 바깥세상에서 적응하는데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을 받는다.
출소 일주일 전에 한나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다.
미하엘은 한나에게서 옛 연인의 모습도 체취도, 전쟁의 죄에 대한 반성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실망하였으나 그래도 출소 전날 전화를 해서 떠들썩하게 출소 파티를 할 것인가, 조용하게 맞이해 줄 것인가를 묻는데, 한나가 "여전히 너는 계획짜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꼬마야!"라고 한다.
이 한나의 말이 평소 만나는 여자들에게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생각한다는 비난과 같이 생각되어 화가 나고 그렇게 전화를 끊은게 한나와의 마지막이 된다.
한나는 출소일 새벽에 자신이 읽던 책들 위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한나에게 각별한 마음을 지니고 있던 교도소장으로부터
그동안 한나가 카세트가 여러번 고장을 일으키도록 자신의 녹음 테잎을 여러번 듣고 그걸 토대로 혼자 글을 깨우쳤고, 글을 깨우치자 홀로코스트에 관한 출판서들을 구해서 읽고, 맹인 수감자들에게 자신의 테잎을 빌려주고, 늘 신중하고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여 교도소 안의 제소자들에게 존경받았으며, 여러해 동안 몸의 청결유지에 힘을 쏟았으나 근래 몇 해 동안은 청결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것들을 전해 듣게 된다.
한나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방으로 안내 받은 미하엘은 한나의 방에서 한나를 찾으려하고, 그걸 본 교도소장은 미하엘과 한나의 관계에 대해 묻지만 대답하지 못하다.
한나의 방 벽에는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고, 한나가 손수 쓴 글귀들- 싯귀, 인용구-이 걸려있고, 그리고 신문에서 오려낸 사진-노신사에게 상장을 받는 소년-이 걸려 있다.
그 사진 속 소년은 고교 졸업식에서 교장선생님께 상장을 받는 미하엘 자신이었다.
글을 깨치기 전 자신이 살던 도시를 떠나 있었던 한나가 어떻게 그 지역신문을 볼 수 있었고 어떻게 자신의 사진을 구했고 재판을 받을때도 몸에 지니고 있었는지? 한나는 자신을 늘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자신에게는 아무말도 남기지 않고 교도소장에게 남긴 글에서 전한 유언을 지키기 위해 미국에 살고 있는 생존소녀에게 한나가 남긴 돈을 전해주고자 찾아간다.
아주 품위있게 살고 있는 생존소녀는 한나에 대한 용서도, 한나의 돈을 받는 것도 거부한다.
단지 자신이 수용소에서 잃어버린 차 상자가 있었노라며,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한나의 차 상자만을 받겠으며, 한나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은 허락한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문맹퇴치 단체에 한나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감사 편지를 받으며, 자신은 한나의 기억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이 글을 쓴다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난 글 읽기를 대충하면서도 긴 시간에 걸쳐 하느라 줄거리를 요약하여 쓰는 걸 못하는데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생생하게 줄거리를 떠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 소설의 사랑이야기가 강렬했고 가슴아프게 느껴졌기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독일인이 제3국의 범죄와 전후 조국에 대한 죄의식과 조국애의 애증과 미하엘이 한나에 대한 사랑을 거둘 수도 없고 한나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 들일 수도 없는 상황, 즉 사랑과 배반이라는 열병으로 치환되는 것으로 풀어 쓴 이 소설에서 늘 유대인 입장에서 알고 바라보던 홀로코스트를 독일 사람들 입장에서 바라 보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연대책임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든 인정받지 못하든 간에, 나의 학생세대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경험적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대책임은 제3국 당시에 일어났던 일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묘석에 철십자 훈장을 그려 넣은 사실, 그토록 많은 수의 옛 나치주의자들이 법원과 행정부 그리고 대학에서 출세를 한 사실, 독일연방공화국이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사실, 전통적으로 망명과 저항이 순응하는 삶보다 덜 전승되었다는 사실-이 모든 사실은 비록 우리가 손가락으로 죄를 저지른 당사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고 해도 우리 가슴속을 수치심으로 가득 채웠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르킨다고해서 우리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가락질을 함으로써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할 수는 있었다. 손가락질은 수치심의 수동적인 고통을 에너지와 행동과 공격심리로 전환시켜주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우리 부모들과의 대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끝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을 자이가르닉 효과(미완성 효과)라고 한다고 한다.
미하엘도 어느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나가 사라지면서 첫사랑으로부터 놓여나지 못하면서 괴로워하고 한나와의 기억들이 자신의 인생 전반을 지배하게한다.
나는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친구를 보곤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청춘에로의 회귀 열망이지, 정말 첫사랑 연인을 향한 열망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청춘에로의 회귀와 어린 연인을 혼동한다고 믿는다.
미하엘도 한나를 만나 늘 좋은 냄새가 났었던 옛 한나의 체취와 탄탄했던 육체를 찾으려 했지만 늙어 버린 한나에게 실망한다.
그러나 한나는 욕망을 초월한-어느날부턴가 씻는 것에의 집착을 놓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하엘은 한나가 떠난 다음에야 알아차린다.
미하엘은 자신의 사춘기에 대한 열정과 한나를 혼동한 것은 아닐까?
미하엘은 오랜 시간을 허비한 다음에 첫사랑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말한다.
고향도 세월이 지나면 변하고, 변한 고향에 가서 옛 일을 추억할 수 있지만 변한 고향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고, 더더욱 내 맘속의 옛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것이며, 추억을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닐것이다.
[나는 또 나의 그리움이 그녀하고는 상관없는 형태로 그녀에게 고정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그렇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추억이 없다면 온전한 그리움일까?
끝마침을 잘한 첫사랑일지라도 또는 미완으로 남아 늘 가슴저린 첫사랑일지라도 피끓는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나와 미시미처럼 남의 사랑이야기에 눈물 콧물 흘리며 애닳아 하지는 않을것이기에 이세상의 수많은 미하엘에게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랫동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죽은 얼굴에서 살아 있는 얼굴이 떠 올랐다. 늙은 얼굴에서 젊은 얼굴이 말이다. 늙은 부부들에게서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에게는 늙은 남자의 모습 속에 젊은 남자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을 것이고, 남자에게는 늙은 여자의 모습 속에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신선하게 보존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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